이승한 삼성테스코 사장은 사장실로 들어서는 기자에게 악수를 청하며 “저는 모차르트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국내 유통정보화를 선도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그를 찾은 기자에게는 의외의 인사말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을 모차르트라고 소개했지만 막상 베토벤의 웅장함을 더 좋아한다는 그에게 음악은 하루 동안의 피로를 풀어주는 특효약이다. 클래식뿐만 아니다. 그의 취향은 모던 팝, 록, 힙합에서 리듬 앤 블루스까지 다양한 장르를 두루 망라한다. 최근 즐겨 듣는 음악에 관해 묻자 그는 CD들을 한아름 안고 오더니 탁자 위에 주욱 펼쳐 놓고는 며칠 전 출장길에 구입했다는 ‘브라운아이즈’를 골랐다. 여러 곡 중에서도 유독 “브라운아이즈의 노래에 푹 빠져 있다”고 말했다.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지난 3년여간 최고경영자로서 삼성테스코를 경영해 온 소회로 이어졌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비틀스 등의 곡에는 저마다 다른 고유의 색깔이 담겨 있습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회사가 나름대로의 CI(Corporate Identity)를 갖고 있다면 최고경영자의 정체성은 그 회사의 CI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이승한 사장은 빌 게이츠와 잭 웰치를 예로 들며 자기 색깔을 가진 경영자가 이끄는 기업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모차르트를 자처하는 그의 ‘최고경영자 정체성’은 어떤 것일까.
“흔히 유통은 느낌, 즉 감(感)이 좌우하는 산업이라고들 합니다. 특히 아시아권 시장에서 상품 진열이나 프로모션 등에 감을 적용한 매장 운영방식이 적중해 매출상승으로 이어집니다. 반면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감보다는 과학을 강조하는 편이어서 동선 구성이나 재고관리를 위한 과학적인 방법을 꾸준히 개발해 오고 있지요. 저는 삼성테스코의 비즈니스 방식에 감과 과학을 결합한 예술과학을 추구합니다. 이것은 테스코 본사가 전수한 과학적인 방식과 우리 고유 정서를 접목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유통을 ‘필리언스(Feelience:Feel+Science)’라고 정의하고 삼성테스코가 운영하는 홈플러스에도 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사장의 예술과학론은 남다른 IT 마인드와 특유의 자신감에 기인한다. 특히 그가 가지고 있는 IT에 대한 이해는 여느 CIO를 능가한다. 이 사장은 기업의 IT는 경영전반의 효율화를 제고할 뿐 아니라 앞으로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 CIO가 해야 할 이상의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IT라는 것은 기업의 생산성과 부가가치, 나아가 기업가치를 높이는 수단입니다. 따라서 특정 부서만의 IT, IT를 위해 존재하는 IT가 아니라 가치 사슬과 제반 업무에 녹아들어 업무의 질을 높일 수 있을 때라야 진정한 IT가 되는 것이지요.”
삼성테스코는 지난해부터 유통정보화의 화두로 떠오른 공급망관리(SCM) 개념을 전격적으로 도입, 본사와 각 점포에 들어가는 제반 시스템을 구축중이다.
삼성테스코는 또 영국 테스코그룹이 추진하는 GCP(Global Core Packag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상품관리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본사와 전국 홈플러스 매장을 통합 운영하는 상품관리시스템은 내년 4월까지 개발이 완료된 후 삼성테스코를 필두로 영국 테스코 본사와 각국 테스코법인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삼성테스코가 영국 본사를 제치고 테스코그룹의 핵심 시스템 개발을 맡게 된 배경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숨어 있다. 지난 2000년 이승한 사장이 영국 테스코 본사에서 열린 사외이사 이사회에 참석했을 때 일이다. 이승한 사장은 전세계 테스코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표준시스템 개발이 의제로 올라오자 한국이 시스템 개발에 가장 적합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결국 이사진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처음에는 불과 5개 점포를 가지고 있던 한국의 삼성테스코가 테스코그룹의 핵심시스템을 개발하겠다고 나서자 처음에는 모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이때 그의 기지가 유감없이 발휘됐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700개 점포를 가진 영국 본사보다는 오히려 작은 규모의 삼성테스코가 시스템을 개발하고 시범 적용을 거친 후에 전세계에 보급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지 않겠느냐고 이사진을 설득했지요.”
한국의 계절적 특성도 적극 활용했다. “ 한국은 4계절뿐 아니라 초봄, 초여름, 초가을, 초겨울까지 8계절로 세분화된 기후에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소비자와 다양한 프로모션을 실시하는 유통환경을 갖추고 있어 발생 가능한 모든 변수를 시험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 강조했습니다.”
결국 그는 세계 최고의 IT기술과 브로드밴드 환경을 이용해 훌륭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이사진들의 공감대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사람좋은 웃음으로 시종 대화를 이어가던 이승환 사장은 일순 진지한 눈빛이 되었다.
“논리적인 설득보다 더 주효했던 것은 저를 비롯한 경영진의 자신감과 열정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점이었습니다. 자신감과 의지를 높이 사는 유럽식 사고방식을 가진 이사진들에게는 ‘할 수 있다’는 큰소리가 믿음을 줬던 것이죠.”
국내 할인점 시장점유율 1위인 이마트에 대응한 홈플러스의 향후 운영방침을 물었을 때도 이승환 사장 특유의 자신감이 배어 나왔다.
“사람을 체격으로 평가하지 않듯이 덩치가 크다고 1등 기업이라는 칭호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체격보다는 체질 혹은 체력이 더 가치있게 평가된다면 삼성테스코는 2위가 아니라 1위라고 당당히 얘기하겠습니다. 물론 규모도 꾸준히 확장해 가겠지만 말입니다.”
이승한 사장은 최근 전세계 유통·제조업체의 공동기구인 ECR(Efficient Consumer Response)의 아시아 의장으로 피선된 것을 계기로 올해부터는 삼성테스코뿐 아니라 국내 유통산업의 경쟁력 제고에도 힘쓸 계획이다.
“앞으로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고 한국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유통이 될 것입니다. 한국은 유통산업에서 세계화에 뒤떨어져 있습니다. 한국이 아시아 의장국이 된 것을 국내 유통업체와 제조업체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기회로 삼고 ECR 표준을 선도해 국제 표준으로 적극 추진하겠습니다.”
모차르트의 열정을 삼성테스코와 국내 유통산업에 쏟아붓고 있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다.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
<약력>
△70년 영남대 경영학과 졸업 △2001년 한양대 대학원 도시계획학 박사과정 △70년 삼성그룹공채 11기 입사(제일모직) △75년 신세계 맥그리거 스토아부문 총괄 △78년 삼성물산(건설) 런던지점장 △84년 삼성물산(건설) 해외사업본부 총괄임원 △90년 삼성물산(건설) 개발사업본부장 △96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보좌역 부사장 △97년 삼성물산 유통부문 대표이사 △99년∼현재 삼성테스코 대표이사 사장 △99년 아시아소매업자대회 한국대표 단장 △2000년, 대한상의 유통·물류위원회 부위원장 △2002년 ECR 아시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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