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경쟁력이다>(30)연구소편-1.정부출연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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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원을 뽑을 때 가장 염두해 두는 부분이 그 사람의 능력보다는 얼마나 연구소에 머물면서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나 하는 것입니다.” 어느 국책연구소의 나노신소재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고위관계자는 “능력있는 인재를 뽑아 연구를 해도 세계적 기술을 따라가기 힘든 첨단 분야에서 연구원에 오래 남아 일한 사람을 최우선 순위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 국책연구원의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또 “오래 일할 것 같은 연구원을 선별해 사람을 뽑아도 동료 연구원들의 잦은 이탈이 연구소에 남아있는 연구원들의 연속성 있는 연구를 방해하고 있다”며 “연구소의 인력 이탈이 국책연구소가 풀어야할 가장 큰 숙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에 남아있는 인력들도 동료들이 대학 교수로 이직하는 것을 보면서 이직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능력이 없는 것처럼 치부되는 현실에 씁씁해 한다”며 “출연연에 소신을 갖고 연구하는 인력이 몇 명이나 되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언제부턴가 국책연구소 안에는 연구소를 대학교수로 가는 디딤돌로 여기는 연구원들이 넘쳐나면서 출연연에 이같은 ‘철새 연구원’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원천기술을 개발, 산업화를 촉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출연연의 연구기능 업무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원천기술을 연구·개발해 국가 과학기술과 정보기술 등 세계를 주름잡을 첨단기술의 밑바탕이 되어야 할 국책연구소가 인재들이 잠시 들러가는 정거장으로 변한 사실은 국가경쟁력 향상 차원에서도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소(STEPI)의 박재민 박사가 최근 발표한 ‘고급 과학기술인력의 학·연·산 유동성 실태조사 및 제고방안’ 보고서를 보면 연구원들의 ‘탈(脫)정부출연연구소’와 ‘입(入) 대학’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998년부터 2001년 4월까지 출연연에서 대학으로 이직한 인력은 전체 과학기술인력 중 18.5%를 차지, 가장 높았다. 또 출연연에서 기업으로의 이동한 인력도 17.4%에 달해 이 기간중 출연연을 떠난 인력이 35.9%나 됐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지난 99년에 연구원을 중심으로 이직한 박사급 연구원 수가 303명으로 전체 박사급 연구원 수 대비 13.3%의 이동 비율을 보였으며 2000년에는 이보다 많은 총 449명의 박사가 이동, 20.0%의 이동비율을 보였다. 그리고 이후 2001년 4월까지 4개월간만에도 160명의 박사 이동이 있어 해가 거듭할수록 출연연의 박사급 인력 이동이 심화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출연연에서 가장 왕성히 활동적으로 일해야 할 30∼40대 젊은 박사급 연구 인력의 이탈이 급증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30대가 38.4% 그리고 40대가 39.3%를 차지, 전체 이동의 77.7%나 차지했다.

 이 수치는 거꾸로 대학에서 출연연으로 이동하는 박사급 연구원이 4.1%, 그리고 기업에서 출연연으로 옮기는 비율이 2.5%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출연연의 허리인 젊은 연구인력의 유출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박사급 과학기술 인력을 대상으로 이직 희망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 또한 대학에 재직하는 연구자의 20.8%와 민간기업의 46.9%가 이직을 희망하는 것에 반해 국책연구소는 53.8%가 강력하게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출연연의 인력 이탈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력 이탈이 심화되면서 출연연의 인력 구조는 머리는 크고 하체가 부실한 역피라미드 구조로 변화되고 있다. 원활한 연구를 위해 연구를 기획하는 책임연구원 밑에 선임연구원과 일반 연구원의 구조로 형성돼야 하나 출연연의 인력구조는 이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즉 총리실 산하 19개 기관과 과기부 산하 8개 기관의 연구원 분포를 살펴보면 연구원급에 해당하는 20∼30대 인력이 604명인데 반해 30∼40대 인력은 2636명 그리고 40∼50대 2334명과 그 이상이 551명으로 역피라미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수치에 따르면 연구를 기획하는 책임연구원급 인력이 2885명으로 전체의 50%에 육박하고 있다. 여기에 평균 연령이 35세 이상인 선임 연구원급을 합하면 전체 연구인력의 60∼70%가 실제 연구를 담당하는 인력이 아니라 연구를 기획, 관리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 국책연구소의 인력구조가 역피라미드로 바뀐 것은 기존에 있던 연구원들의 이탈 후 이를 메울 정식 인력을 제대로 뽑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출연연 외부에서 연구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연구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책임연구원들은 능력있는 연구원들이 대학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어 임시직 연구원을 채용, 공백을 메우기에 급급했다.

 실제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생명공학연구원을 비롯한 표준과학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 등 대다수의 출연연이 부실한 연구인력을 임시인력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들 임시 연구원은 장기 연구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 결국 연구부실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도 있다.

 STEPI 박재민 박사는 “출연연으로부터 대학과 산업으로의 지속적 인력 이동이 있다는 것은 산·학·연간 보상체계가 불균형한 것을 나타내준다”며 “출연연의 실질 임금이 충분히 높아지거나 연구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정부출연연의 우수인력난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선진국은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

 해외 선진국들은 정부출연연구소라는 독특한 연구소 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와 달리 공공연구기관이 존재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공공연구기관은 보건후생부 산하 국립보건원(NIH)과 상무부 산하 국립표준기술원(NIST), 에너지부 산하 샌디아국립연구소 등이다. 이들 공공연구기관은 철저한 고객 지향성으로 고객인 과학기술공동체, 정부기관, 의회, 민간기업, 일반국민에게 적극 접근하고 있다.

 NIH에는 27개 연구소와 센터들이 설립돼 자체 실험실에서 연구는 물론 국내외 대학, 의과대학, 병원 및 기타 연구소에 흩어져 있는 과학자들의 연구를 지원한다. NIH의 2001년 예산은 196억달러로 이 중 160억달러(80%)를 외부연구 지원에, 22억달러(11%)를 내부연구 지원에 사용했다.

 NIST의 2001년도 예산은 7억2000만달러로 3억달러 이상의 예산을 사용하고 있는 측정표준연구소(MSL)는 산하에 8개의 연구소를 두고 있다.

 MSL 산하 8개의 연구소들은 △빌딩 및 화재연구소 △화학연구소 △전기전자공학연구소 △정보기술연구소 △생산기술연구소 △재료과학공학연구소 △물리연구소 △기술서비스국이다. 이들 연구소는 특히 많은 산업조직 및 협회에 관여하고 기술지도(technology roadmap)를 만들어 산업계를 지원하며 산업계 연구인력을 초청연구원으로 초빙하는 방문연구원 시스템을 운영, 미래의 연구영역을 결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본에는 문부과학성 소관에 이화학연구소와 원자력 연구소, 경제산업성 소관의 산업기술총합연구소와 물질재료연구기구가 대표적인 공공연구기관이다.

 일본은 국립연구기관의 독립행정법인화를 추진, 정부와는 별도의 법인격을 지닌 조직을 창설해 탄력적인 조직과 업무 운영, 효율성 향상과 투명성 확보를 도모하고 있다.

 이화학연구소는 일본의 유일한 종합연구기관으로 외부연구자 유입제도가 잘 발

달해 외국인연구자 활용의 제도적 기반도 잘 갖춰져있다. 이화학연구소는 2개의 연구체제를 둔다. 이중 일반연구실체제는 분야별 기초과학을 연구해 장차 필요한 프로젝트를 발굴하기 위한 인큐베이터적 연구군 체제며 유동연구실체제는 계약연구자를 중심으로 프로젝트의 중점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체제다.

 독일은 시장지향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프라운호퍼연구협회와 자유롭고 과학적 성과의 달성을 지향하는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막스플랑크연구협회, 높은 인적·물적 비용이 들고 복잡한 학제적 연구를 수행하는 헬름홀츠대형연구센터, 내용적으로 다양하고 각기 특수한 연구를 수행하는 청색목록연구기관이 있다.

 막스플랑크 고체물리연구소의 1999년 예산은 4300만마르크로서 국제협력을 위해 전체 예산의 약 6%를 할당해 두고 전체 예산의 4% 이상을 신진과학자들에게 투자한다. 이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연구결과에 대한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좋은 학술지, 대중들에 자신의 연구결과를 적극 알리려고 노력한다.

 네덜란드의 공공연구체제는 네덜란드 응용과학연구원(TNO)과 대형기술연구소(LTIs)로 구성돼 있다. TNO의 연구원은 완전 독립적인 비영리 응용연구기구로 기초연구에서 상업적 응용연구에 이르는 계약연구를 수행한다. TNO는 여러 개의 연구기관과 산하기업, 사업센터, 지식센터로 구성된 복합체로 이들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경영단 형태의 관리 주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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