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등급위원회 이대론 안된다>(3)심의업무 허술

 

 영상물의 심의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양면성을 갖고 있다. 하나는 청소년에 유해한 영상물과 함께 외국영상물의 무분별한 수입을 걸러줄 수 있다는 명분을 갖고 있다. 반대로 몇 사람에 의해 영상물의 유해성이 판정됨으로써 공정성의 문제를 낳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영상물에 대한 창작력을 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양면성을 갖고 있어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심의는 항상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논란을 최소화면서 영등위의 존립자체에 의문을 갖지 않도로 하는 게 중요하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을‘일 수밖에 없는 입장을 감안한다 해도 업체들은 불만이 크다.

 “영등위 심의는 한마디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닙니까.”

 게임업체 CEO들은 영등위의 심의가 한마디로 ‘고무줄 심의’다고 이야기 한다. 특히 벤처업체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외산게임이나 메이저 업체들의 게임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유독 벤처업체들의 게임에는 엄격한 이중적 잣대를 적용,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A사가 개발한 1인칭 슈팅 PC 게임은 국내에서 제작됐다는 이유로 18세이용가 등급을 받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이미 해외에서 개발된 이 게임의 전작 시리즈가 출품됐을 당시 15세이용가 등급을 받았던 터라 A사 관계자들은 심의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A사는 영등위에 잘못보여 유리할 것이 없다는 판단 아래 게임의 재미가 줄더라도 부분 수정을 통해 재심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영등위의 심의업무가 도마에 오른 것은 이미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심의 결과는 오락가락하고 심의기간도 작품이 많이 몰리면 2∼3주 이상 기다려야 하는가 하면 재심의에 따른 심의료 부담도 만만치 않아 업체들이 경제적 타격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심의 업무 자체에 대한 시스템이 마련돼 있기나 한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이뿐만 아니다. 심의결과도 결과지만 사후처리도 오히려 업체의 불만을 낳고 있다. 업체 관계자들이 심의 결과에 대한 사유를 물어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것은 이미 관례로 굳어져 있다.

 이에대해 주무부처인 문화부 관계자도 “심의 내용과 관련한 회의록 등 관련 자료를 넘겨 받지만 대충 대충 정리한 게 태반”이라고 확인해 줄 정도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같은 심의 업무에 대한 논란이 여러번 있었음에도 이를 막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업계는 우선 심의 결과가 오락가락하는 것은 모호한 심의기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형평성 문제는 모호한 심의기준을 게임마다 다르게 적용하다 보니 발생한다는 것. 상황별로 세부적인 기준안이 마련돼 있으면 심의 결과가 예측 가능해 게임을 개발하는 업체들이 이를 사전에 고려해 게임개발에 임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아무리 심의기준을 세분화하고 체계화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적용할 사람과 시스템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실제 소위원회 심의위원들은 대부분 영등위나 문화부 관계자들이 추천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종종 인선과정의 불투명성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현재 소위원회는 본위원들이 아는 사람을 추천하는 형태로 위촉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시피한 상황이다.

 더구나 심의위원에 대한 심의절차나 심의판례 등 심의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영등위는 현재 심의위원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한 연구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심의 결과에 대한 상세한 회의록 작성 및 공개를 통한 심의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도 영등위의 시급한 과제다.

 한 관계자는 “심의위원들이 내리는 등급은 해당업체로서는 수십억원의 매출이 왔다 갔다하는 중대한 결정”이라며 “이를 심의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조차 받지 않은 사람이 결정하고 이에 대해 사유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는 것은 아무리봐도 납득이 되지 않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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