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안병엽 총장

 

 “오랫동안 접어뒀던 한자공부를 다시 하려니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ICU)의 안병엽 총장(57)은 요즘 한자공부에 열심이다.

 우리나라는 5000년 동안 수많은 흥망성쇠를 겪었는데 이러한 격변기에 국가CEO가 어떠한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직접 고서를 통해 조망해 보기 위해 한문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안 총장은 “국가CEO가 당시 어떤 결정과 역할을 담당했는지를 보면 현대를 사는 CEO들이 위기의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반면교사’가 될 것”이라며 “좀더 한문을 공부한 후에 본격적으로 고서를 탐독할 계획”이라고 청년과도 같은 향학열을 불태웠다.

 한글로 쓰여진 해독본을 읽지 않고 굳이 한문으로 쓰여진 고서를 직접 탐독하려는 이유에 대해 “번역본은 아무래도 작자의 주관이 들어가 왜곡의 우려가 있다”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국가CEO의 모습을 보기 위해 고서를 읽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안 총장은 어느정도 한문 해독능력이 완성됐다고 생각되면 곧바로 고서를 찾아나설 계획이며 이러한 작업이 차질없이 진행된다면 집필도 해보겠다며 욕심을 보였다.

 안 총장은 지난해 5월 정보통신부 장관직을 끝으로 29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가족과 떨어져 ICU가 본교를 두고 있는 대전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다.

 혼자 생활하려면 쓸쓸하지 않느냐고 묻자 “조금 그렇긴 하지만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마음의 여유로움을 느낀다”며 “대덕단지 연구소의 과학자들과 의견을 교환하거나 토론을 나누는 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한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매일 대전 갑천을 시속 8㎞의 속보로 걸으면서 예전에는 누리지 못한 정신적인 풍요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공직에 오랫동안 몸을 담았기 때문에 ICU로 옮겨온 후에 어려움이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나 스스로 유연한 자세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다”며 “조직원들과 서로 대화를 통해 이러한 문제는 곧 극복할 수 있었고 이제는 총장직이 체질에 맞는 것 같다”며 여유도 보였다.

 이러한 그의 자세는 ‘마음을 넓게 갖자’는 좌우명에서 나오는 듯하다.

 “마음을 넓게 가지면 모든 일을 서두르지 않고 편하게 할 수 있다. 또 겸손하고 진솔한 대화가 가능하며 이러한 태도로 인해 정책수립에 있어 좋은 의견을 많이 청취할 수 있고 반영할 수 있게 된다”며 좌우명에 담긴 뜻을 설명했다.

 그는 29년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경제기획원과 재정경제원에서 보냈고 마지막 4년을 정통부에서 지냈다.

 정통부에 몸 담았던 4년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의 인생방향을 크게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 정통부와의 인연을 통해 그는 ‘IT전도사’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안 총장은 정통부에 재직하는 동안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IT기술로 인해 잠깐 한눈을 팔면 시대흐름에 뒤떨어질 것 같은 강박관념에 휩싸이곤 했다. 그래서 IT전문가들로부터 강의를 듣고 밤을 새워가며 책도 보면서 IT기술 및 정책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고 했다. 이런 지식의 축적이 지금은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IT전문가가 된 계기가 된 것 같다며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2000년 2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13개월 남짓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IMT2000 사업자 선정, 디지털TV 송출방식 논란 등이다.

 특히 디지털TV 송출방식 논란은 가장 곤란을 겪은 경우다. 비록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을 선정했었지만 후에 논란이 일어나면서 많은 마음의 갈등도 겪었다. 하지만 둘다 일장일단은 있는 것이고 그 당시 결정에 대해 지금도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29년이라는 기나긴 공직생활에서 아쉬움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공직생활 중 가장 아쉬운 점에 대해 물어봤다.

 “경제기획원 시절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ICU와 같은 이공계분야 전문인력 양성과정을 육성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며 “당시 제대로 기초인력을 양성했더라면 현재와 같은 가공조립형 산업구조는 탈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미련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그는 현재 ICU총장직이 너무나도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정통부 장관 시절 인력양성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제 ICU에서 꿈을 이루게 됐다며 시간을 아껴가며 후학 양성에 정열을 쏟고 있었다.

 “ICU를 세계적인 유명대학 수준으로 만들기 위한 환경과 여건을 만느는데 주력하겠다”는 안 총장은 “ICU는 과거 산업사회의 구태를 답습하지 않은 대학이 되도록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ICU는 현재 영어기반 교육체제와 현장중심 교육, 다학제적 학과분류 등을 실천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과거의 틀을 깨뜨릴 수 있는 획기적이고 다양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인력양성에 관심이 많은 그로서는 최근의 청소년들의 이공계 진학 기피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그는 “결국 청소년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것은 IMF이후 이공계 분야의 직업 안정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하면서 “이공계 분야의 고용을 창출하고 전문가들을 우대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라는 강조했다.

 ICU총장직을 떠난 후의 거취에 대해서는 “IT업계를 떠날지는 알 수 없지만 떠나더라도 IT와 조금이라도 관계된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며 “어떠한 산업이라도 IT와 결합 없이는 발전할 수 없기 때문에 그동안 쌓은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며 IT분야에 대한 깊은 애정을 나타냈다. 

 그는 또 “IT기술은 잠재된 능력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산업의 곳곳으로 침투, 구조개혁을 이끌어내는 힘이 되어야 한다”며 “앞으로 어느 분야에서 일하던지 IT를 이식하는 데 중점을 두는 IT전도사로 남겠다”는 굳은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

 

 <약력>

 △72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행정고시 11회 △88년 일본 일교대(一橋大) 대학원 경제학 석사,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국 조정총괄과장 △91∼94년 경제기획원 감사관, 공정거래위원회 거래국장, 예산실 제2심의관 △96년 재정경제원 국민생활국장 △96∼2000년 정통부 정보화기획실장, 정보통신정책실장, 정통부 차관·장관 △2001년 순천향대학교 명예경제학 박사 △2001년∼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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