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엔터테인] 게임업계 CEO는 출장중

 국내 최대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서비스하고 있는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 그는 한달에 보름은 해외에서 보낸다. 미국, 홍콩, 일본 등 현지지사를 돌다 보면 보름도 모자란다.

 직원들이 한여름 휴가계획으로 들떠 있는 요즘, 김 사장은 아예 해외출장으로 휴가를 대신하고 있다. 새로운 비전을 듣고 싶어하는 ‘엔씨 가족들’이 세계 곳곳에서 그를 애타게 기다리기 때문. 하루는 북미에서, 하루는 아시아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그의 눈은 시차적응이 안돼 빨갛게 충혈되기 일쑤다.

 게임업체 CEO들의 해외출장이 잦아지고 있다. 국내 게임산업이 비상하면서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한 물꼬가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CEO들은 수출입 협상을 진두지휘하는가 하면 현지지사 경영을 손수 관리한다. 굵직굵직한 해외 게임전시회를 직접 챙기는 것은 물론이다. 주요 해외업체 관계자들과 끈끈한 인맥을 형성하는 것도 CEO의 주된 임무다. 출국에서 입국까지 빼곡한 일정을 보내다 보면 국내보다 해외에서의 일과가 더 바쁜 것도 예사다.

 하지만 세계 게임시장은 바야흐르 ‘국경없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격전지. 시시각각 변화하는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슈퍼맨’이 되기를 자청하는 CEO들이 한 둘이 아니다.

 ◇해외출장이 휴가=해외출장이 잦은 CEO로는 김택진 사장과 함께 판타그램인터랙티브의 이상윤 사장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CEO가 이끄는 회사는 이미 북미, 유럽, 아시아 등지에 현지지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게임업체. CEO가 국내 본사는 물론 현지지사까지 챙길 수밖에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외출장이 잦아진 케이스다.

 특히 이들은 연초나 하반기가 시작되는 여름에는 보름에서 한달을 아예 해외 일정으로 스케줄을 잡는다.

 김택진 사장은 올초 미국, 홍콩, 일본 등 아시아와 북미를 넘나드는 ‘글로벌 시무식’을 가진 데 이어 최근에는 여름휴가를 현지지사 순례로 대신하고 있다. 특히 지난 주말 미국 오스틴에서 돌아온 김 사장은 인천공항에서 바로 일본행 비행기로 갈아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또 18일 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에버퀘스트 제품 발표회’ 기자회견장을 찾는 강행군을 강행했다.

 이상윤 사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달 말 일본방문을 계기로 여름휴가를 현지지사 나들이로 대신할 예정이다. 개발자 출신인 이 사장은 현지지사를 방문하면 비즈니스뿐 아니라 현지에서 개발중인 게임의 완성도까지 손수 점검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수출하러 해외 간다=국산 게임에 대한 해외의 ‘러브콜’이 잦아지면서 CEO들의 해외출장도 잦아지고 있다. 특히 한참 주가가 오르고 있는 온라인 게임업체 CEO들은 한달에 두세번씩 출국하는 것은 다반사다.

 그라비티 김정률 회장은 지난달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 수출계약을 위해 대만, 태국을 잇따라 방문했다. 나코인터랙티브 한상은 사장과 웹젠 이수영 사장도 지난달부터 수출계약을 앞두고 수시로 대만과 중국을 넘나들었다. 이들 CEO가 해외를 오간 뒤에는 항상 ‘수출계약 조인식’이라는 결과물이 쏟아졌다.

 최근에는 트라이글로우픽처스 김건일 사장, 하이윈 허종도 사장 등 신생 온라인 게임업체 CEO들도 게임이 뜨면서 중국, 대만, 미국 등지로 떠나는 횟수가 늘고 있다.

 바이어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국제전시회도 CEO들이 즐겨찾는 해외출장 코스다. 한번에 세계 각국의 바이어들과 수출협상을 벌이는데 국제전시회는 더할 나위없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

 지난 5월 미국 LA에서 열린 세계 최대 게임박람회 E3가 대표적이다. 한빛소프트 김영만 사장,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 그라비티 정병곤 사장, 판타그램 이상윤 사장, 제이씨엔터테인먼트 김양신 사장, 위자드소프트 심경주 사장, 지오인터랙티브 김병기 사장 등. 국내 게임산업을 이끄는 리딩 컴퍼니 CEO들이 거의 모두 전시회장을 찾아 바이어들과 물밑 협상을 벌였다.

 오는 8월과 9월에 열리는 영국의 ECTS, 일본의 도쿄게임쇼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미 몇몇 사장들은 이들 전시회에서 만날 사람들의 리스트며 스케줄을 벌써부터 꼼꼼히 챙기고 있을 정도다.

 ◇시차·음식 적응이 최대의 적=CEO들에게 해외출장은 몹시 유쾌한 일이다. 몸은 피곤하지만 일단 해외출장을 다녀오면 수출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가 성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CEO들에게 해외출장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우선 시차나 음식에 적응하는 것은 하나의 고역이다. 해외출장이 잦은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이나 판타그램 이상윤 사장의 경우 시차 때문에 눈이 충혈되기가 다반사다.

 최근에 해외 나들이가 잦아진 사장들은 음식이 입에 안맞아 거의 굶거나 배탈로 사경을 헤맨 경험담을 종종 말하곤 한다. 해외출장에 관한 한 거의 베테랑에 가까운 김택진 사장이나 이상윤 사장도 출장이 길어지면 ‘떡볶이’나 ‘된장찌개’가 그리워진다고 말할 정도다.

 해외출장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하는 것도 말못할 사연이다. 제이씨엔터테인먼트 김양신 사장은 지난 3월부터 미국으로 출국한 뒤 지난달 초에 입국했다. 석달간 미국 현지에서 크고 작은 비즈니스를 성사시켰지만 남편과는 별거 아닌 별거생활을 한 셈.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은 이런 일이 많아지자 가족의 거처를 아예 미국으로 옮겨 놓았지만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을 놓치기 일쑤다.

 김택진 사장은 “출장이 잦아지면 달라진 음식에도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비행기안에서 억지로 잠을 청하는 등 시차적응에도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긴다”며 “다만 일을 핑계로 가족을 소홀히하는 것은 무척 마음에 걸리지만 뛰는 만큼 성과가 남는 것이 해외 비즈니스인 만큼 결코 게을리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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