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칩 설계업체의 엔지니어들이 하이테크 붐 기간인 지난 95년부터 거의 5년 동안 PC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것이라는 신형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에 매달렸다. 이 작은 신생업체 트랜스메타는 폴 앨런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등을 투자자로 유치하고 리눅스 창안자인 리누스 토발즈 같은 인재를 고용하면서도 개발중인 ‘비밀 병기’에 대해서는 일체 침묵을 지켜 세간의 궁금증을 더 증폭시켜 놓았다. 트랜스메타는 마침내 2000년 1월 19일 신형 인텔 호환칩으로 절전, 고성능, 저비용의 ‘크루소(Crusoe)’ 칩을 세상에 선보였다. 미디어와 분석가들은 트랜스메타가 이 칩을 앞세워 칩의 거인 인텔을 누를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크루소의 화려한 데뷔 후 2년반이 지난 현재 이 실리콘밸리 신생업체의 앞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크루소 칩은 혁신적 설계를 평가받아 일본 기업 등 일부 컴퓨터 메이커가 채택했지만 정작 미국의 노트북 제조업체로부터는 외면당했다. 성능이 개선된 두번째 크루소 칩 ‘TM5800’은 생산상의 문제로 6개월간 출시가 지연되기도 했다.
게다가 경기 침체가 칩 수요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로 인해 트랜스메타의 매출은 격감하고 최고경영자(CEO)는 그 동안 3차례나 바뀌었다. 이 회사 주가는 상장 직후 45달러 61센트까지 올랐으나 현재 거래가는 2달러 안팎으로 95%나 폭락했다.
시장조사회사 가트너 마틴 레이놀즈 분석가는 트랜스메타의 위기에 대해 “지금은 제품 자체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제품으로 무슨 일을 할지 정확하게 판단한 다음 시장을 찾아 성공 제품으로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트랜스메타는 하이테크 세계의 오랜 숙원인 소형, 절전형 컴퓨터를 만드는 기술 개발에 오랫동안 매달려왔다. 그 결과 마이크로프로세서 작업량의 일부를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옮긴 혼성 칩 크루소를 개발했다.
이 칩은 트랜지스터 수가 줄어들고 크기가 줄어들어 이 전에는 두개 이상의 칩이 필요했던 부품들을 통합시키는 게 훨씬 쉬워졌다. 이 칩들은 팬이 필요없는 데다 소형의 첨단 디자인에 꼭 들어맞는 게 특징이다.
여기다 전력 소모가 적고 인텔의 ‘펜티엄’ 칩이나 AMD의 ‘애슬론 (Athlon)’ 칩 같은 하드 와이어 CPU보다 훨씬 탄력성이 높다는 것은 더욱 빼어난 장점이다. 특히 크루소는 인텔 칩을 쓰지않은 컴퓨터를 위해 설계된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도록 재프로그램시킬 수 있다. 트랜스메타 경영진들은 이제 칩 생산 문제는 해결됐으며 절전형, 고성능, 저비용 모바일 컴퓨팅 시대에 부응할 만반의 채비를 갖췄다고 강변하고 있다. 매튜 페리 트랜스메타 CEO는 “우리는 젊은 기업”이라면서 “칩 제조업체의 혁신정신에 크루소의 혁신적 기술을 통합시켜 정말 흥미있는 제품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크루소는 휴렛패커드(HP)가 곧 출시할 초경량 노트북 컴퓨터인 ‘에보 PC (Evo PC)’와 윈도XP 기반의 셔츠 주머니 크기인 OQO의 ‘울트라 PC’에도 들어간다. 이 칩은 동시에 소니와 후지쯔, 도시바, NEC 등의 경량 제품에도 탑재된다. 하지만 완전한 PC 운용체계에서나 가능한 고성능을 구현하는 소형 기기에 대한 수요가 얼마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트랜스메타는 올 1분기 동안 불과 7만개의 칩을 공급했다. 머큐리리서치에 따르면 이는 인텔이 전체적으로 3500만개, 휴대폰 칩 500만개를 출시한 것과 큰 차이가 난다. 딘 매카론 머큐리 리서치 사장은 “트랜스메타가 장기적으로 살아남는 기업이 되려면 칩 출시량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달 말 최근 분기 실적을 발표할 트랜스메타는 아직 흑자 전환 시기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 업체는 올 1분기말 현재 현금 보유고가 2억1600만달러에 달했고 지난 3월 29일 마감된 반기에 매출이 560만달러에 순적자가 8060만달러를 냈었다.
<박공식기자 kspark@ibiz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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