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산업화는 국가주도로 이뤄졌다. 국가가 강력한 경제드라이브 정책을 수행하면서 그에 따른 기업의 발전을 추구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정보화부문도 마찬가지다. 공공부문의 정보화는 그 추진 과정에서 IT기업들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효율성·투명성을 보장하고 질 높은 대민서비스를 유도한다. 나아가 전통기업에는 정보화 수준 동반상승의 계기를 준다는 점에서 그 사회적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공공부문 정보화는 공기업의 투명성·효율성 제고를 이끌어낸다. 공공부문 정보화 추진은 규모와 파급효과 면에서 어떤 정보화 사업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전략은 급격한 민영화가 이뤄지고 있는 현재에도 유효하다.
공기업 정보화는 지난 99년 정보화 추진 마스터플랜인 정보화전략계획(ISP) 수립을 기점으로 꾸준한 성장세에 있다. 민간의 정보화 우수기업과는 차이가 있지만 대기업과는 비슷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일부 공기업의 경우 동일업종 민간기업보다 우수한 수준이다.표참조-공기업 정보화 수준 평가결과, 기업정보화지원센터, 2002. 2
공기업은 국가 인프라를 지원하는 기관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공기업이 추진하는 업무는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공기업 정보화는 국가 정책이나 정부 지원에 따라 정보화 솔루션을 구축해왔다. 여기에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e비즈니스 부서를 신설하거나 확대 개편하는 등 선도적인 정보화사업을 벌이고 있다.
공기업의 정보화는 투자면에서도 다른 민간기업에 비해 안정적이다. 공기업은 경기 변동주기의 영향을 민간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받으면서 대규모 정보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공기업의 정보화 투자는 국내 건설 대기업 전체 투자액의 2.5배에 육박한다. 업종대비 최고의 투자를 하는 금융기관에 비해서는 다소 처지는 3분의 1 수준에 이른다. 특히 올해 투자만을 살펴보면 기타 민간부문보다 전년대비 상승률이 가장 높다.표참조-정보화 투자전망, 기업정보화지원센터, 2002. 2
공기업 정보화 추진에 비해 국가가 주도하는 전자정부(e-Government) 사업은 아직 미완이다. 공공부문 정보화와 맞물려 함께 진행돼야 할 전자정부 추진은 사회 전반 IT흐름을 견인한다는 엄청난 효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흡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전자정부는 90년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80년대부터 이미 개념도입이 시작된 미국, 영국, 독일 등 몇몇 선진 국가를 제외하고는 상위권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보화 인프라를 구축, 정보격차를 상당부문 줄여 나가고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민이 느끼는 정보화 체감도는 아직 낮다. 아직도 주민등록등본을 떼려면 동사무소로 직접 가야 하고 원격지에서 호적등초본을 떼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의료보험카드, 주민등록증,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따로 가지고 다녀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민이 느끼는 정보화 수준이다.
올해 말 완료 목표인 ‘전자정부 11대 핵심과제’ 추진 역시 난관에 부딪혀 있다. 추진체계에서 이를 이끌어낼 만한 구심점이 없다. 정부혁신추진위 소속 전자정부 특별위원회는 형식상의 자문기구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전자정부 구축의 중심점이 돼야 할 이 조직은 부처 간 이해 충돌에 대한 의견조율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부처 간 정보공유 및 연계 미비로 인한 업무 중복, 사업부문별 기득권 다툼도 일고 있다. 부처의 각종 업무와 조직체계를 파악, 전자정부 업무를 주도해야할 위원회의 위상이 약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전자정부는 해당 위원회가 각 부처를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부여될 때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결과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이달 들어 전자정부 추진을 위한 대통령 직속 ‘전자정부국(OEG)’을 신설한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중앙 정부 의욕과는 달리 구청, 지자체 등 하부 행정 조직이 예산, 인력 등 역량 부재로 정보화를 추진하기 힘들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자료는 이같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올해 지방자치단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4.6%. 군 단위의 경우는 19.1%에 그치고 있다. 이 상황에서는 정보시스템 구축에 투입할 예산 여력은 거의 없는 상태라고 보면 틀림없다. 이런 열악한 재정능력, 인력부족은 지자체의 정보화 추진을 어렵게 만든다. 당연히 국민의 전자정부 체감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정부 구현이 국가정보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국가정보화 사업이 갖고 있는 파급효과는 미국 대공황 당시 뉴딜정책만큼이나 큰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표참조-전자정부 11대 사업별 현황, 한국전산원 자료
전자정부 11대 과제의 핵심과제 중 하나인 ‘전자조달 활성화’사업만 보더라도 정보화 사업에서 공공부문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공공조달 규모는 GDP대비 11∼13%로 98년 이후 증가추세에 있다. 조달청을 통한 중앙 조달규모만 GDP의 3%에 육박하고 있다.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교육위원회, 정부투자·출자기관 및 기타 기관 등 공공조달의 수요 기관은 2만7065개로 집계되고 있으며 이들 중 81.5%가 전자조달에 참여하고 있다. 전자입찰의 경우 최근 2년간 조달청 입찰참가 2만6000여 업체의 77%가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엄청난 규모다.
정부는 우리나라 정부 및 공공부문 조달 물량 전체를 전자조달시스템을 통해 추진하려 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조달관련 행정절차를 혁신하고 온라인화해 단일 창구를 통해 모든 정부의 조달 업무가 전자화된다. G2B를 완료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전체 규모의 24.2%를 차지하는 조달청을 통한 중앙조달, 75.8%에 이르는 정부투자기관 및 출연기관, 각급 군부대 조달업무에서 서류가 사라지게 된다.
이런 전자조달이 완료되면 정부는 조달관련 내부 행정절차를 개선하고 온라인화함으로써 업무 생산성 향상 및 조달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된다. 민간 조달업체는 조달 단일창구에 등록만 하면 모든 공공기관 입찰·계약에 참가할 수 있다. 입찰공고 등 공공부문의 주요 조달 관련 정보를 언제 어디서나 얻을 수 있게 됨으로써 정부조달에 대한 참여기회가 대폭 확대된다. 또 비용절감을 할 수 있다. 민간부문 전자상거래 확산은 물론 관련 기업의 정보화를 촉진시키며 국내 SI업체들에는 시장창출의 계기가 된다. 바로 다양한 전자정부 실현, 공공부문 정보화의 효과라 할 수 있다.
공공부문 정보화, 전자정부 실현에 따른 이익을 누리려면 국가 차원의 지속적인 정보화 추진과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추진체계의 수립이 필수적이다. 잘 짜여진 계획과 이를 밀어붙일 만한 추진력, 두 가지는 국가정보화 사업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그럴 때만이 공공부문 정보화가 기업정보화를 유도하고 나아가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우선 정부는 첫째, 공공부문 정보화가 규모와 파급효과가 큰 IT활성화 정책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는 지속적이고 선도적인 정보화투자를 견인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IT기업은 물론 전통기업 등에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국가정보화는 시스템이 구축됐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원과 인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미래 지향적인 사업이다.
둘째, 정보화 사업을 통해 얻어진 다양한 경험과 성공사례가 민간 기업에 체계적으로 보급돼 확산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공공부문 정보화 사업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그 성공사례는 물론 실패사례까지도 솔직히 전파돼야 한다. 우리가 경험한 실패사례는 그와 유사한 실패를 거듭하지 않도록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셋째, 공공부문 정보화사업 진행시 사업자 선정 및 관계설정이 합리적이고 투명해야 한다. 사업자 선정, 감리, 효과분석 등이 병행돼야 하며 서비스 단계별로 확인서를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 시스템 구축 이후 애프터서비스는 물론 단계별로 향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점과 그에 따른 추가 비용 지불 여력도 명시해야 한다. 공공부문 정보화사업 때마다 나타나는 부조리와 관행이 사라져야만 체계적·합리적인 공공부문 정보화가 이뤄질 수 있다. 이를 위해 이들 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제3의 기관을 활용한 감리, 효과분석 등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국가정보화에 대한 많은 투자는 실업을 줄이고, IT 발전을 촉진하는 촉매제가 된다.
현재의 국가정보화 사업이 활성화되고 IT산업이 국가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자리잡게 하려면 정보화를 위한 비용지출이 소비가 아닌 투자라는 사실을 가슴속에 각인해두어야 한다.
<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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