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한국EMS산업협의회 정국교 초대회장.

“전자제품제조서비스(EMS)가 위기에 빠진 한국제조업을 살려낼 도깨비 방망이는 아닙니다. 작금의 경쟁력 위기를 넘기는데 힘을 보태는 링거액 주사라고 하면 맞겠네요. 처음에는 따끔해도 결국 기업활동에 활력을 주는 보약, EMS모델은 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EMS산업 발전에 분기점을 마련할 한국EMS산업협의회가 지난 19일 출범식을 갖고 공식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 조직은 갈수록 침체되는 제조업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한국적인 EMS모델을 모색하기 위해 주요 전자부품·조립업체와 정부 산하기관 등 70여 회원사가 자발적으로 모여 설립한 국내 최초의 EMS 전문단체다.

 협의회의 초대회장으로 선출된 H&T 정국교 사장(44)은 국내 EMS산업의 전망에 대해 의외로 신중한 자세로 일관했다. EMS가 쉽게 돈되는 사업이 아니라며 거듭해서 후발업체에 주의를 당부한다. 그는 EMS분야에 관해 실무적, 이론적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전문가다. 지난 90년대 후반 여러번 미국에 들려 EMS산업에 대한 벤치마킹을 하면서 한국경제 토양에 어떻게 접목시킬까 방안을 고민해왔다. 많은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이 무모한 생산시설 확대와 신규상품의 개발 실패로 주저앉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생산기술 자체가 경쟁력이 되는 산업모델을 구상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잘 나가는 대형 EMS 모델은 우리나라 실정과 너무나도 멀었다. 소재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생산과정이 일부 대기업에 종속된 한국식 경제 풍토에서 제품생산에 특화된 EMS 전문기업가 입지를 마련하기란 매우 척박하기 때문이다.

 “문뜩 생각이 나더군요. 한국식 EMS 모델을 만들어보자. 중소 제조업체가 모여 각자의 장점을 살려 생산네트워크를 구축하는 EMS 모델을 구축할 경우 한국에서도 EMS 기반의 제조업구조개편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정 사장이 이끄는 전자부품업체 H&T를 우선 EMS기업화하기로 마음먹었다. 특정 대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국제적으로 다양한 거래처를 확보한 기술 중심의 제조업체를 지향한 것이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거둬 한국EMS산업협의회의 설립에 자연스럽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기술이 뛰어나지 않은 중소기업이 어설프게 이것저것 돈되는 아이템을 찾아 생산품목을 늘리는 것은 쉽게 망하는 지름길이란 것이 정 사장의 지론이다.

 “기술력이 있는 중소기업은 제조 전문회사로 가는 것이 낫다고 선택했지요. 다음달 말에는 회원사간의 실질적인 해외주문 수주와 생산배분을 담당하는 온라인 네트워크(http://www.emskorea.gr.kr)가 문을 열 겁니다. 그동안 EMS분야에서 쌓아온 노하우가 담겨있으니 기대하셔도 됩니다”라고 장담한다.

 한국형 EMS 모델의 정의에 대해 묻자 EMS 제조업체와 R&D 전문업체, 중소기업 사이의 전략적 제휴로 IT제조업계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가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EMS산업협의회 출범을 계기로 국내 전자산업의 EMS 구조개편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그동안 지속적 임금상승과 중국 경제의 무서운 추월로 이중고를 겪어온 국내 IT제조업체들은 경쟁력을 향상시킬 새로운 생산모델을 애타게 찾아왔다. 특히 생산과정을 전문화시킨 EMS산업이 미국, 일본에서 급성장하는 모습을 목도하면서도 국내상황에 접목이 어렵다고 사실상 포기했으나 EMS산업협의회 출범을 계기로 상황이 달라질 것이란 장담이다.

 이미 협의회에는 60여 중소업체 외에도 삼성테크윈과 삼보, 팬텍 등 기라성 같은 세트메이커들도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어 향후 EMS 모델의 발전방향에 대해 국내 대기업도 큰 관심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EMS는 중소기업이 무작정 뛰어들기에 위험한 측면이 많아요. 외국 대기업과 거래 자체가 목표가 되면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특히 EMS시장에 나오는 생산주문은 대개 일반화된 기술에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제품, 즉 원가경쟁력만 갖고 버티는 제품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이익확보가 어렵거든요.” 그는 EMS산업의 미래에 대해 결코 장밋빛 전망을 던지지 않는다. 냉혹한 글로벌시장에서 쏟아지는 단가인하 압력을 버텨가며 유지하는 EMS 모델이 결코 중소 제조업체를 장기적으로 보호해 주는 대안이 아니란 설명이다. 그러면 도대체 왜 EMS 모델을 도입하냐고 물어봤다.

 “일단 산업공동화 현상을 막을 수 있거든요. 이대로 몇년만 더 가면 한국의 IT제조업은 뿌리가 뒤흔들릴 겁니다. 현재 우리가 가진 생산설비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려면 EMS 외엔 대안이 없어요.” 정 사장은 중소업체가 EMS사업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말고 벤처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통한 고부가가치 상품개발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벤처기업들이 스스로 생산라인을 갖추려고 하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이며 벤처기업의 생존율을 떨어뜨리는 요소라고 덧붙였다.

 한국EMS산업협의회는 비록 민간단체지만 전자부품연구원, 전자산업진흥회, KOTRA, 산업기술재단 등 굵직한 정부산하기관이 다수 참가하는데다 정부도 적극적인 EMS 육성책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출범하는 한국EMS산업협의회는 향후 국내 제조업 전반의 구조개편 과정에 적잖은 파장을 던질 전망이다.

 “만약 용산상가의 조립PC를 한군데서 다 조립해서 만든다면 얼마나 이익이 늘겠습니까. 성능으로 차별화 전략이 안되는 경우엔 자신의 생산기득권을 포기하고 공동의 이익을 모색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의 열변은 계속됐다. “지금 한국경제는 분명히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월드컵 분위기에 휩쓸려 잠시 잊고 있지만 분명히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더 악화되고 있어요. 이제는 조속히 한국형 EMS산업을 구축하는 것 외엔 대안이 없어요.”

 정 사장은 자신의 직원들에게 무분별한 카드사용을 금하고 현금이 급한 사람에게 회사에서 은행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가족경영을 모토로 삼고 있다.

△80년 단국대 무역학과 입학 △93년 대륙산업개발 이사 △96년 태일개발 상무 △98년 뉴맥스 상무 △2001년 H&T 대표

<배일한기자 bail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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