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의 정보통신 문화산책>(62)승리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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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개막 직전 한 신문에 게재된 우리나라 축구대표팀 사진 한편으로 쓰여있던 글이다. 그 사진과 글을 보면서 필자는 가슴이 찡해오며 눈물이 핑 돌았다. 승리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들의 표정에서 원없이 흘린 땀의 흔적을 감지할 수 있었고, 승리의 조건을 갖추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막식에 이어 게임은 시작되었고, 23명의 태극전사들은 빛나는 투혼 끝에 월드컵 첫승과 함께 16강에 올랐다. 그리고 예감한 대로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히딩크 감독, 찬사를 보낸다. 자기의 철학을 갖고, 자신의 판단에 가치와 확신을 갖고 우리 대표팀을 이제 그 어느 팀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팀으로 만든 그에게 갈채를 보낸다. 특히 이탈리아전에서 동원 가능한 모든 공격력을 투입하면서도 전체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없도록 팀을 조율한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축구는 게임이고, 게임은 이겨야 한다. 아무리 축구를 잘해도 승리하지 못하면 진정으로 잘하는 축구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다섯번 월드컵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단 한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열심히 싸웠고, 잘 싸웠지만 승리를 하지는 못했다. 세계 최강하고만 경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불가리아와 남미의 비교적 약체 팀과도 경기를 했다. 강력한 슛을 몸을 던져 막고 머리가 터져 피를 흘리면서까지 열심히 했지만, 단 한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그런 우리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4강을 준비하는, 세계 어느 팀도 함부로 볼 수 없는 팀이 되었다. 경이로운 일이다. 그 과정에는 히딩크 감독이 있었다. 하지만 천하의 히딩크라도 선수들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면 그 기간 안에 우리의 실력을 이만큼 향상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한 능력과 잠재력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승리하는 방법을 모르고, 승리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히딩크는 그것을 우리에게 제시했고, 멋진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번 월드컵에서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이었는가.

 승리의 조건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선수들의 개인적 능력이다. 능력이라 함은 체력과 기술과 정신력, 투지 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개개인의 경험과 성격, 신체조건 등 다양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팀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어느 정도 수준의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다음은 지도자의 능력이다. 그 지도자의 능력은 선수들의 훈련뿐만이 아니라 팀 전술과 상대편에 대한 분석능력까지 포함한다. 팀의 특징과 선수들의 특징까지 극대화시킬 수 있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을 때 승리를 엮어낼 수 있게 된다.

 다음은 관중이다. 관중의 성원이 선수들의 사기를 높여준다. 선수들의 능력을 100% 이상 발휘할 수 있게 한다. 붉은 악마, 수백만의 거리 응원단들의 성원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경이로운 현상으로, 이번 월드컵에서 승리를 위한 힘으로 작용했다.

 히딩크 감독은 이러한 조건들을 승리를 위해 다듬고 활용했다. 선수들에게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최종 순간까지 연습에 몰두할 수 있게 했고, 어느 포지션에 두어도 맡은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조율했다. 지도자로서 승리를 위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 것인가를 명확하게 파악해 내었다. 탁월한 정보수집과 분석하는 능력을 발휘하였고, 스피드를 활용하여 경기를 지배하는 독창적인 시스템을 개발해내었다.

 월드컵 8강. 승리의 조건을 갖춘 결과였다. 역전을 시켰어도 우리는 그것이 우연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당연한 사항으로 받아들였다. 이미 승리의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게임에서의 승리는 결코 쉽지 않다. 준비되어야 한다. 승리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승리의 조건은 축구경기 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특히, IT사업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에게는 IT 분야의 유능한 선수들이 있다. 열과 성을 다하여 새로운 희망을 일궈내는 그들의 능력은 매우 뛰어나다. 또한 IT 분야의 사업추진에 관한한 매우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고, 지도자들도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시행착오는 있을 지라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특히 IT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국민의 성원이 있다. 축구경기의 붉은악마 이상의 국민적 성원이 있다. PCS, ADSL의 보급과정에서 보여주었듯이 우리민족만큼 IT 분야에 열렬한 성원을 보내주는 민족은 없다. 세계 최강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장비를 마련해놓아도 이용자들이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기술과 장비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축구경기에서의 붉은악마 응원단보다 더 강력한 국민적 성원이 있기에 우리는 IT 분야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승리의 조건 중 중요한 사항 하나가 있다. 그것은 인내다. 자신에 대한 인내뿐만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인내도 포함된다. 이는 선수와 지도자, 국민 모두에게 해당하는 사항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차범근 감독은 네덜란드에 0 대 5 참패를 당하고 나서 마지막 경기는 젊은 선수들을 출장시켜 경험을 쌓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결선에 오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언론은 난리를 쳤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차범근 감독은 마지막 게임도 보지 못한 채 귀국해야 했다.

 그때 마지막 경기였던 벨기에와의 게임을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향후 진정한 승리를 위해 젊은 선수들에게 경험을 쌓게 하겠다는 차범근 감독의 생각은 분명 진정한 승리자가 되기 위한 방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반역에 가까운 질타를 당한 끝에 감독에서 쫓겨 나는 비극에 이르렀던 것이다.

 선수와 지도자 그리고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하나의 명확한 목표가 부여되었다면 참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지도자를 믿고 조금은 느긋하게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당시 차범근 감독은 국민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했지만, 이번 히딩크 감독은 오대영(5 대 0) 감독이라는 별명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승리를 위해 언론의 비난도 극복할 수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훌륭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승리했다. 8강에 올랐고, 이제 4강을 노리고 있다. 우연이 아니라 당당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우리는 강팀의 대열에 올라섰다. 국민들의 전폭적인 성원이 이어졌고, 남은 경기에서도 그 성원에 보답하고자 선수들은 더욱 열심히 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승리에 대한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결승전이 열리는 일본 요코하마까지 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대표팀이 승리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확신을 통해 갖는 기대다.

 월드컵 개막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듯이 우리의 IT 사업도 이미 곳곳에서 세계 어느 나라와 싸워도 승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을 느끼고 승리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성원이다. 시청 앞과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 메우고 ‘대∼한민국’을 외쳐대는 그 붉은 수백만명의 물결보다 더 많은 성원을 우리 IT사업에 보내주고 있다. 그 성원에 겸허한 마음으로 감사하고 어느 나라와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완벽한 승리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더욱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과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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