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법 파고를 넘자](1)中企 PL법 사각지대

 전기·전자제품의 사고발생률이 타업종 제품보다 현저히 높아 전기전자업체들이 제조물책임(PL)법 시행에 철저히 대비해야 함에도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 중소기업들은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특히 국내에서 처음 실시되는 PL법은 각종 분쟁과 소송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마저도 미흡해 시행과 함께 큰 혼란이 발생, 기업활동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높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박영식 PL코리아 사장은 “그동안 발생한 1140건의 사고를 상품별로 분류해본 결과 연소기구와 가정용 전기제품이 각각 30.5%와 29.5%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며 “7월부터 PL법이 시행되면 전기·전자업체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17일 밝혔다.

 그러나 대부분 전기전자업체들은 아직도 인식부족은 물론 인력과 자금 등 여러가지 사정으로 PL법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사전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LG전자 홍윤표 부장은 “오랫동안 품질관리에 신경을 써온 대기업들은 대체적으로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지만 수많은 협력업체들이 이를 제대로 따라주지 못해 완벽한 대응은 역부족인 실정”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지난 3월 종업원 5명 이상 300명 미만의 중소 제조업체 271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PL법 시행과 관련해 사내 전담조직을 구성한 업체는 조사대상의 0.7%에 불과하고 PL법과 관련해 ‘교육받은 인원도 없고 전문인력도 양성되지 않은 상태’라는 응답이 56.1%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PL법 대책 추진 상태를 묻는 질문에는 ‘충분히 추진하고 있다’는 업체가 5.2%, ‘일부 분야에서 PL법 대책을 추진중’인 업체가 13.7%, ‘향후 추진할 예정’인 업체가 51.9%, ‘계획이 없다’는 업체가 29.2% 등으로 집계됐다. 결함 방지를 위한 각종 안전검사 실시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44.4%가 ‘안전검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자사제품에 경고·지시·설명 등의 표시를 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45.7%로 조사됐다.

 중소기업들은 특히 사전대응뿐 아니라 사후대책에도 소홀, 상당한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은 실정이다. 중소기업들은 원자재나 부품은 물론 완제품 공급계약시 PL법 시행에 따른 법적조치를 제대로 취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전무해 분쟁이나 소송 발생시 책임소재를 놓고 관련 업체들간 갈등을 겪는 등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한영 LG화재 부장은 “PL법에 따른 피해책임은 완성품 제조업체는 물론 경우에 따라 원자재와 부품 제조업체, 해당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업체들에게까지 적용되기 때문에 각자의 위치와 입장에 따른 차별화된 방어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진공의 조사결과 PL사고에 대비해 계약서류에 명확한 책임분담을 명시하고 있는 업체는 조사대상의 8.7%에 불과했다. 또한 생산제품에 대한 PL사고에 대비해 제조물책임보험이나 생산물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한 업체는 전체의 7.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PL법 시행을 앞두고 제도적 미비점도 노출되고 있다.

 기업과 소비자간 분쟁이나 소송이 발생했을 때 이를 신속·원만하게 해결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미흡한 실정이다. 이상기 전자제품PL상담센터장은 “정부가 업종별로 PL상담센터를 개설해 소비자와 기업간 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강구하고 있지만 정작 상담센터는 법적 뒷받침이 없어 양측의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힘들다”며 “대부분 PL관련사고가 분쟁조정없이 곧바로 법적 소송으로 이어질 공산이 높다”고 밝혔다.

 박영식 사장은 “PL사고를 신속정확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뢰와 권위가 있어야 하지만 현재 국내에는 제품결함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시간과 장비,인력을 두루 갖춘 시험기관이 태부족한 실정”이라며 “이로 인해 소송이 장기화될 경우 책임면제 규명 책임이 있는 기업들이 상당한 부담과 피해를 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PL보험 요율산정에도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LG화재 이한영 부장은 “보험요율은 보험개발원의 통계에 따라 요율이 산정되지만 국내에는 PL과 관련해서는 음식물 외엔 통계 자체가 없어 해외 재보험사의 통계에 따라 요율을 산정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보험료가 지나치게 비싸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반면 보험사들은 위험부담이 높아 현재의 보험료로도 안심할 수 없다고 반박하는 등 갈등을 빚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해외 PL 사례는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자료수집도 미약한 실정이다. 박영식 PL코리아 사장은 “PL사고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미리 시행된 해외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해당 업종이나 제품의 성격에 맞게 대응책을 강구해야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인력과 자금 부족 등으로 해외사례의 수집과 분석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