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온칩(SoC)은 반도체업계의 비전’
반도체업체들이 SoC로 다시 세력재편에 나섰다. 비메모리와 메모리가 결합되는 향후 시장에서 SoC는 새로운 비전이기도 하고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라는 게 반도체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더욱이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가 되면서 SoC는 앞으로 반도체업계뿐만 아니라 소니·삼성전자·노키아·에릭슨 같은 IT시스템업체에 대한 경쟁력 평가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 때문에 SoC는 D램 개발 및 생산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반도체업계에도 기회이자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반도체업계 SoC에 왜 눈독 들이나=반도체업체들이 SoC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다기능 칩이 통합되면서 기존에 다져놓은 주도권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먹지 않으면 먹히는 약육강식의 경쟁속에서 자신의 성역을 높게 쌓아왔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은 또다른 도전과 시장재편을 불러올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반도체 후발주자에게는 SoC가 새로운 기회다. 수십억달러를 투입해야만 가능한 일관생산라인(fab·팹)과 조립공장이 없어도 아이디어와 디자인 기술, 그리고 특화된 반도체 지적재산(IP)만 있으면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 임베디드 마이크로프로세서(CPU) IP업체 ARM이다. 팹은 물론 반도체 하나도 없는 이 회사는 SoC시장을 겨냥해 오직 IP로만 승부수를 띄워 매년 40∼45%의 급성장세를 이어가며 10년 만에 세계 최고의 IP업체가 됐다. 인텔과 TI, 모토로라, 삼성전자 등 세계적인 반도체업체들도 ARM의 IP를 사용하고 있다.
최근 주요 반도체기업 CEO들이 모여 SoC의 대응방안에 대해 비공개 회의를 가진 적이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치푼 챈 시놉시스 사장(COO)은 “SoC는 반도체업계의 혁신적인 도전이자 과제지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과 전문인력을 갖춰야 하는 게 숙제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며 업계 대표들이 SoC사업을 놓고 크게 고민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또 인텔과 SoC분야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TI 톰 엔지버스 회장은 “전자업계의 혁신과 성장의 중심은 통신으로 넘어갔다”면서 “TI는 통신 응용제품에 필수적인 DSP와 아날로그, 소프트웨어 기술을 갖고 있는 만큼 향후 무선통신 및 SoC시장에서 지배력을 잃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해,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한국 반도체업계의 대응과 과제=SoC는 D램 위주의 기술 및 공정 개발에만 집중해온 우리 업체에는 큰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오너경영체제를 바탕으로 대규모 설비투자를 적시에 단행하고 대량 생산체제를 통해 D램시장을 휩쓸었지만 다양한 반도체 IP와 디자인 능력이 필요한 SoC분야가 적잖게 낯설기만 하기 때문이다.
반면 SoC는 비메모리(시스템IC)와 메모리가 결합돼 아이디어와 기술력만 있으면 한번 겨뤄볼 만한 고부가가치 산업인라는 점에서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는 반응도 크다. 삼성전자·하이닉스를 비롯해 에이디칩스·TLi 등 100여개에 이르는 국내 주문형반도체(ASIC) 및 디자인 하우스들이 SoC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SoC분야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국내업체들이 넘어야 할 산은 너무나 많다. SoC 개발에 필수인 IP가 태부족하고 유통도 활성화돼 있지 않다. 또 D램 위주의 공정기술을 SoC 공정으로 확대하기 위한 라이브러리 구축도 미미한 실정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쟁력 있는 인력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D램 제조를 위해 양성된 인력으로는 수천만 게이트가 집적되는 SoC 설계와 시시각각 변하는 시스템 동향을 따라잡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대학에 특화된 커리큘럼을 마련하고 기업들은 SoC 연구소를 설립해 산학 공동 과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나노급 미세회로 공정기술 확보와 저유전 절연재료(low-k dielectric) 개발, 기업간 기술교류를 지원하는 IP유통 활성화의 근간을 정부 지원 아래 조속리 마련해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는 설득력이 있다.
한국이 현재의 이동통신과 초고속 네트워크 분야의 선도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기업, 학계 및 연구계가 함께 힘을 합쳐 64KD램 신화를 일궈냈던 저력을 다시한번 발휘해야 할 때라고 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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