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축제 ‘2002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화려한 개막식과 함께 레이스가 본격 진행되면 지구촌 식구들은 새 천년에 처음 열리는 월드컵 축구의 묘미에 빠져 밤잠을 설치게 될 것이다.
국가 대항전인 만큼 어느 나라가 우승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역대 전적을 놓고 보면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이탈리아·브라질 등이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다. 그러나 축구의 묘미는 실력과는 무관한 결과가 속출하는데 있다. 예측불허의 결과는 축구공이 둥글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경기장 환경과 그날의 컨디션, 그리고 상대 전술에 의해 승패가 엇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축구의 전술은 승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소다. 실제로 역대 강팀들은 다양한 포메이션 개발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그 때문인지 시대에 따라 전술은 많이 변했다. 50년대에는 4-2-4 포메이션이 주류를 이뤘고 60∼70년대에는 수비의 안정성에 치중하는 4-3-3 시스템이 각광을 받았다. 80년대 이후에는 미드필더와 빠른 공격수로 역공이 가능한 3-6-1, 3-5-2 포메이션이 널리 사용됐다. 현대 축구는 98년 프랑스가 월드컵을 차지한 이후 미드필드를 강화하는 3-5-2 시스템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미드필더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은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니다. 중원에서 볼을 배급하고 공격에도 가담하며 수비수 역할도 하는 게 미드필더다. 프랑스가 98 월드컵에서 우승한 동인에는 뛰어난 미드필더 ‘지네딘 지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 대표팀 감독 ‘히딩크’의 말대로 뛰어난 ‘킬러(해결사)’가 있더라도 믿음직한 미드필더가 없으면 볼 배급이 가로막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우리 산업계가 세계 경제에 예민하고 경기 외적인 요인에 의해 휘청거리고 허둥대는 까닭도 ‘킬러’는 그럭저럭 양산해 내면서도 좋은 미드필더와 전술이 없기 때문이다.
한때 세계시장을 주름잡은 컬러TV·전자레인지·반도체 등은 우리경제를 이끄는 뛰어난 킬러 역할을 했다. 반도체를 앞세운 수출전략은 크게 주효했고 성과도 컸다. 이동전화단말기·TFT LCD 등은 우리 산업 전선에 새로운 킬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중원으로 들어가 보면 미드필더를 거의 찾아 보기 어렵다. 킬러 양산에만 힘을 기울임으로써 중원은 메말라 있는 실정이다.
전술측면에서 보면 더욱 한심하다. 차세대 신수종 제품 개발은 등한시 한 채 반도체 등 특정 제품에만 역량을 집중, 끝내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D램 가격하락과 하이닉스 사태는 대표적인 사례다. 부랴부랴 나노기술(NT)과 생명기술(BT)을 전략적으로 육성한다고 법석을 떨고 있지만 언제, 어느 시점에서 제 몫을 해줄지는 의문이다. 후방을 맡고 있는 기초산업과 노동시장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견실한 산업을 이끌기 위해서는 믿음직한 미드필더를 많이 키워내야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드필더감은 수두룩하다. 2차전지·PCB·커넥터·콘덴서·정밀모터 등을 아우르고 있는 부품산업은 좋은 미드필더 감이다. 특히 LCD구동칩 등을 위시한 비메모리 분야와 2차전지·다층기판(MLB)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등은 미드필더로서뿐 아니라 ‘킬러’ 역할도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는 유망한 품목이다.
경쟁국인 일본이 근 10년 동안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중원 및 후방 산업을 튼실히 해왔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노쇠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 기회에 우리도 산업 전술을 새롭게 짰으면 한다. 사양이 다한 품목은 투자 일선에서 물려야 한다. 글로벌 경쟁체제에 맞는 제품들을 일선에 내세우고 중원을 두텁게 하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2002 월드컵대회 개최를 계기로 우리 산업이 한단계 올라서서 세계 경기 흐름에도 흔들림이 없는 모습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국민의 염원인 16강 진출을 꼭 실현했으면 한다.
<모인 산업기술부장 inm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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