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열린 세미나 ‘국민의 정부 정보통신정책 4년 성과와 과제’의 토론 마당에서 패널들은 세계 최강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한 정부가 이를 활용한 구체적이고 획기적인 산업정책의 수립에는 소홀했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정보통신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범정부차원의 협력이 필요하고 특히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선택과 집중을 원칙으로 하는 정부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용태 전경련 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발제)=양승택 장관 취임 이후 지난 1년 동안 정통부는 정보화 선도부처로서 CDMA 세계화 및 초고속 인터넷 해외진출 등 세계가 주목하는 많은 공적을 이뤘다. 그러나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 환경에는 소프트웨어(SW)산업 육성이 절실하므로 한국을 세계의 SW 생산 및 수출기지로 만들어 또 한번의 퀀텀 점프(quantum jump)를 일궈내야 한다.
정부조직이 갖는 여러가지 한계로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한 투자와 과감한 정책 시행이 지연되고 있다.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언론과 야당의 비판도 수용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사실 이같은 선택과 집중이 어렵지만 이런 변화의 모습이 외국인들에게 비춰질 때 전세계 기업인들이 한국을 주목할 것이다.
80년대 일본 정부는 산업계를 잘 선도하고 산업계도 정부의 정책방향을 잘 이해해 세계 최고의 경쟁력 있는 국가가 됐다. 그러나 일본 통산성은 세상이 어떻게 변한다는 것을 예측하고 부단히 안을 발표했는데도 정부 속성상 난관이 있었다. 결국,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요소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력을 상실해 ‘잃어버린 10년(lost 10 years)’을 야기하는 원인이 됐다.
우리는 훌륭한 IT인프라와 기업가 정신을 가진 인력이 있다. 향후 몇년은 IT를 통해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을지가 판가름나는 중요한 시기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뭔가 하나만 분명히 추진하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의 정보통신정책은 모든 것이 정보통신부에 맡겨지면서 범부처차원의 협력이 결여됐다. 기획예산처나 재정경제부 등의 보다 폭넓은 지원이 아쉽다. 우리 재계는 정부에 획기적인 산업정책을 제안하고 이를 정부가 받아들여 새로운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보다 구체적인 산관협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홍성원 시스코코리아 전 회장=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까지의 정부 정보통신정책은 훌륭했다. 그러나 기업들이 실제로 일하는 데 있어서는 뭔가 초점이 어긋난 듯한 느낌이다. 이제 우리는 미국과 일본을 능가하는 통신 고속도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 고속도로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 e비즈니스에는 우리 경제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럼에도 세수문제를 걱정해 세제지원을 망설이고 있다. 기업 모두가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세수는 자연히 올라가고 기업경영도 투명해진다. 이제 우리 정부는 정보통신강국에 걸맞게 선진국보다 앞선 정책을 시도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금룡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정부는 기존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투명해지고 있는 기업들로부터 세수를 확대하려 한다. 이런 모습은 기업들의 정보화·경영쇄신 등에 대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전자상거래 등으로 기업들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외부에 그들의 활동을 그대로 노출해야 한다. 그만큼 기업들이 부담을 가지고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려 하고 있다면 정부도 당연히 세제·법제상으로 이런 흐름을 유도해야 한다. 요즘은 벤처캐피털들이 인터넷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불확실성 때문이다. 벤처는 장래 비전을 먹고 사는 기업이다. 첨단산업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 정부는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않고 있다.
◇전길남 KAIST 교수=중국은 앞으로 5년 안에 한국의 IT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는 우리가 잘하는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가장 잘하는 사람, 즉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여기에 맞춰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는 분야를 10개 이상 육성해야 한다. 각 분야 최고 인물을 국내에 끌어들여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를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IT인력 20만명 양성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더 절실한 것은 1000명, 1만명의 최고 전문가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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