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미친 짓이다.’
엥겔스가 결혼을 고급매춘이라며 냉소를 보낸 것은 지극히 남성본위의 발상이지만 유하의 새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를 보면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하다.
결혼(제도)은 더이상 사랑의 총체이자 정착이 아니라 상호간 거래일 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이 영화는 그래서 제목만큼이나 도발적이다.
영화는 대학의 시간강사인 남자(감우성)와 조명 디자이너인 여자(엄정화)의 이야기를 축으로 진행된다. 남자는 조건과 (경제적)능력만을 우선시하는 결혼제도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여자는 결혼은 결혼대로 연애는 연애대로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두 사람의 기묘한 만남은 서로에 대한 열정과 탐닉 사이 사이로 현실과 제도가 불러일으키는 균열을 맛보게 한다. 특히 여자가 조건 좋은 다른 남자와 결혼한 후에도 남자와 계속 관계를 가지며 그들의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 방까지 얻어 주말부부 행세를 한다는 지점에 이르면 이 영화가 결혼(제도)에 대해 견지하는 이데올로기가 좀더 선명해진다. 그야말로 ‘결혼(제도)은 미친 짓’이 되는 것이다.
무릇 사랑과 결혼에 대한 수많은 소설과 영화들이 누누이 신화화돼온 것은 그것의 낭만과 진정성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문간 적대감으로 사랑의 희생양이 돼 버린 이래 현대판 신데렐라 ‘귀여운 여인’의 줄리아 로버츠가 백만장자와 결혼에 골인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결혼은 사랑하는 연인들의 정착지로서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결혼에 대해 ‘결혼은…’은 한꺼풀 벗겨 보자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결혼은 사랑의 귀결인가 혹은 사랑이 결혼에 의해 지속될 수 있는가라고.
결혼은 현실이며 그래서 현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들의 저울질은 부득이하고, 그것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또는 여러 이유로 이뤄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슴 한켠에 묻고 사는 연인들의 이야기는 물릴 만큼 진부하다. 그러나 ‘결혼은…’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여자는 현실로서 결혼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망도 포기하지 않는다. 결혼과 연애, 조건과 사랑은 별개며 그래서 동시에 이 대립항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죄의식 같은 것은 티끌만큼도 없는 도발적이고 영악하며 ‘불온하기까지 한’ 여성 캐릭터의 등장은 진부한 이야기에 아연 낯선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러나 이 캐릭터가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해 보인다. 치명적인 매력을 상실한 도발은 공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영화 전체를 아우를 때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평론가, 수원대 교수 chohye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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