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홀 지음 / 최효선 역 / 한길사 펴냄
강문기
낯선 외국에서 당황했던 기억은 외국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 문제보다도 더 우리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서로의 미묘한 문화적 차이다.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해 붐비는 명동거리에서 행인과 어깨를 연속적으로 부딪치며 걸어간 것을 신기한 듯이 두고두고 얘기하는 것이나,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동성친구와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걷는 것이 서양인에게는 동성연애로 오해받기 쉽다는 사실은 서로간 공간지각의 상이함을 보여주는 작은 예다.
‘숨겨진 차원’은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을 연구한 흥미로운 책이다. 동물들을 관찰한 바에 의하면 동물들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스트레스 요인이 되는 것은 힘 센 동물보다도 오히려 동족의 과밀화다. 제한된 공간에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밀도로 수용하게 되면 동물들은 이상행동을 보이게 되고, 저항력이 약해져 결국 가벼운 요인에 의해 몰사하는 경우를 보인다. 이런 상태의 동물을 해부하면 장기와 내분비가 비정상적으로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영토문제에 민감한 것은 동물만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동물에게서 발견되는 것보다도 더 복잡하게 공간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단순히 넓다거나 좁음, 수용가능 등 수량의 개념보다 피부와 근육, 후각과 시각, 언어 등을 통해 끊임없이 공간을 지각한다. 예를 들어 사무실 의자에서 뒤로 젖혔을 때 벽면에 손이 닿으면 공간이 좁다고 느끼고 그렇지 않은 경우 넓게 느끼는 것이나, 후덥지근한 기후에서는 더 좁게 느끼는 것이다. 같은 공간이라도 가구 배치에 따라 대화를 억제하게 만드는 경향과 사람을 모이게 하는 경향을 갖게 할 수 있는데 한 예로 대합실의 긴 의자는 대화를 억제하는 사회원심적 공간을 만들고, 노천 카페의 테이블 같은 배치는 대화를 이끌어낸다.
저자 에드워드 홀은 인간의 경계는 피부를 넘어선 거리 경계를 포함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그의 관찰을 토대로 네 가지의 거리 영역을 제시하는데 밀접한 거리, 개인적 거리, 사회적 거리, 공적인 거리 등이 그것이다. 이 거리들은 상대방과의 관계에 따라 허용될 수 있는 거리의 영역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밀접한 거리에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들어왔을 때는 무심히 지나치지만 낯선 사람이 침범했을 때에는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영역은 각 문화마다 상이하다. 한 문화에서는 밀접한 거리가 다른 문화에서는 사회적 거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서로 다른 문화는 언어나 옷차림 이전에 각 문화가 갖는 감각의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그것은 공간 감각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공공장소에서 서로 밀치는 것이 아랍문화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미국인에게는 무례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했던 여러 문화를 비교하며 그들의 공간 지각의 상이점을 설명한다. 독일인의 경우 자신의 공간을 자아의 연장으로 느껴 어떻게든 자신의 영역을 가지려고 한다. 독일건물의 육중한 문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데 동일한 회사 내에서 독일인은 문을 닫아야 안정을 얻는 한편 미국인은 닫힌 문에 대해 소외된 느낌을 받게 된다. 결국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의 공간적 감각까지도 이해할 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과연 인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모든 학문과 기술이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발전을 위한다는 목적을 가지지만 실제로 인간의 기본적인 감각세계나 욕구에는 무관심해온 것이 사실이다. 세계화는 세계의 단일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 문화를 정당히 수용함에 있음을 상기할 때 인간에 대한 이해는 현대인이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지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세대학교 교수(mka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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