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만은 컴덱스’
북한이 사상 처음으로 중국 베이징 중국대반점에서 개최한 ‘제1차 조선 컴퓨터쏘프트웨어 전시회’가 22일 사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됐다. 이번 행사는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술 발전 가능성은 물론, IT분야 교류가 남북간에 가장 현실적이고 이익이 되는 접근방법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 자리였다. 북한도 매일 200여명씩 몰리는 세계 각국의 참관객들을 대상으로 IT 기반의 ‘강성대국 건설’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행사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작았고 처음 치른 탓에 주최측의 경험미숙과 준비 소흘이 여기저기서 드러나 아쉬움을 자아냈다. 또 관심을 모았던 ‘조선글화’된 윈도나 리눅스운용체계 등을 출품도 불발로 끝났다. 일부 분야에서는 그동안 외부에 알려졌던 것보다 성능이 우수하지 못하다는 일부 평가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행사는 과학원·조선콤퓨터쎈터·평양정보쎈터·김일성종합대학·김책공업종합대학·압록강기술개발회사 등 내로라하는 기관이 총출동함으로써 국제사회가 북한의 IT현주소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북한측도 이번 행사를 본격적인 해외 마케팅 기회로 삼는 등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크게 달라진 북한의 개방적인 태도도 화제가 됐다. 북한은 당초 사전 신청자에 한해 입장을 허가키로 했으나 행사장을 개방해 누구든지 등록을 하면 입장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회 기간 중 부스를 찾는 참관객들
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하는 자세도 돋보였다.
북한은 이번 행사에서 문자·음성 인식 소프트웨어를 비롯, 생체인증·지문식별시스템, 기계번역 프로그램, 3차원 설계, 의료 소프트웨어, 건강·교육·문화·관광 관련 멀티미디어 콘텐츠, 바둑·장기·마작·축구 관련 전통오락 게임들을 선보여 시선을 모았다. 또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 기술을 이용해 비밀통신과 전자은서·자료은폐 등을 구현한 소프트웨어(SGVision)를 비롯, PC 클러스터링 기술도 눈길을 끌었다.
이번 행사에 대한 남한의 관심은 바로 앞서 열렸던 ‘차이나컴덱스2002’를 능가했다. 사흘동안 남한 참관객들은 하루 40여명씩 입장, 한편으로는 남북공동 행사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정보통신부가 한국전자통신연구원·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관계자 7명으로 꾸려진 조사단을 파견한 것을 비롯해 서두로직·웹매니아·드림미르·우리넷·전능아이티·크로스티이씨 등 IT중소기업들도 단체로 전시회를 참관했다.
남한 관계자들은 전시장 부스를 꼼꼼히 둘러보면서 소프트웨어를 직접 시연해 보거나 구매하고 북측 기술가들에게 제품의 특성과 개발 현황을 묻는 등 기술 수준 파악에 열을 올렸다. 특히 남한 IT 중소기업가들은 북측과 공동사업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해당기관과 연락처를 묻는 등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했다.
이는 그만큼 남한 기업들이 북한의 IT기술 수준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남북간 IT교류·협력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남한 기업가들은 북측의 우수한 기초 기술력과 남측의 상용화 기술·자본을 합칠 경우 커다란 상승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북의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 들었는데 이번 전시회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며 “특히 북한 IT기관들이 그동안 안에만 머물렀던 데서 나아가 해외로 진출하려는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겉으로는 상품성이 떨어져 보이지만 기초 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디자인과 포장을 잘 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AP통신 기자는 “북이 소프트웨어 개발을 제대로 못하는 줄 알았는데 이번 전시회를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한편 행사 주최기관 가운데 하나인 범태평양조선민족경제개발촉진협회의 리도경 회장은 “외부로부터 냉정한 평가를 통해 제품의 경쟁력을 높여 해외 시장 진출을 추진하기 위해 이번 전시회를 개최했다“며 “이를 계기로 개발해야 할 소프트웨어 분야를 선정하고 중점 육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과학원의 리철진 국장도 “이번 전시회에는 16개 기관에서 개발한 67종의 소프트웨어만 가지고 왔다”며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좋은 제안을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베이징(중국)=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사진; 22일 폐막된 ‘제1차 조선콤퓨터쏘프트웨어전시회’는 주최측의 경험부족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국제사회에 북한의 IT수준을 알리는 데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뒀다. 사진은 조선콤퓨터쎈터 부스에서 참관객들이 북측 안내원의 설명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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