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가 교실에 들어서며 “좋은 아침”이라고 가볍게 인사를 건넨다. 탁자에 둘러앉은 학생들도 반갑게 인사한다. 강사는 날씨와 이성 친구, 좋아하는 음식 등 자질구레한 주제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저마다 한마디씩 이야기를 하다보니 강의시간이 금방 지났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도 쓸 데 없는 잡담으로 강의시간을 때웠건만 학생들은 오히려 만족스런 표정이다. 그들은 미국인 선생을 상대로 실전 영어감각을 익힌 것이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입장(외국인 강사)에서 이보다 손쉬운 수업이 또 있을까.
한국의 영어교육열은 이미 병적인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영어만 잘하면 내 자식도 출세할 수 있다는 부모들의 맹목적인 신념은 무려 2조원대의 영어 조기교육시장을 형성시켰다. 심지어 영어발음을 좋게 한다며 미취학 아동의 혓바닥을 절개하는 수술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보통 한국인에게 영어공부란 학창시절은 물론 사회인이 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지적 콤플렉스, 남겨둔 방학숙제와도 같은 존재다.
이처럼 광적인 영어열풍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영어를 구사하는 한국인은 극히 드물다. 이제는 영어교육에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기술적 대안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소리다. 소리를 배우는 방법은 사람을 통해서 직접 듣고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 최선이다. 예컨대 외국인 룸메이트나 배우자를 얻어서 일상 속에서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외국어 학습법인 것이다. 국내에서 외국어학원이 호황을 누리는 가장 큰 이유는 한시적이나마 학생과 외국인 강사간에 양방향 대화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향후 로봇에게 외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면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절감효과는 실로 엄청날 것이다. 상상해보라. 집안에서 하루종일 외국어로 조잘거리는 어학강사로봇과 한 반년만 같이 생활한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간단한 외국어 회화쯤은 저절로 터득할 것이다. 현재 퍼스널 로봇기술은 음성인식에 따른 대화선택과 그럴듯한 표정, 보디랭귀지까지 표현하는 수준에 이미 도달했기 때문에 어학강사로봇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분야다. 마치 집안에 외국인 가정교사를 두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언어프로그램만 바꾸면 일어, 중국어, 독일어 등 어떤 언어도 쉽게 배울 수 있다. 영어실력에 주눅드는 한국사람에게 어학강사로봇은 그 어떤 로봇기술보다 실용화가 시급할 뿐만 아니라 방대한 잠재수요를 지닌 황금시장이다. 이젠 단지 자국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대접받는 외국인 강사들의 수는 줄여야 할 시기다. 외국어학원에서 로봇강사를 채용하는 날을 기다려본다.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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