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피아>패러독스와 경영 - 김종길 덕성여대 교수

 ◇패러독스와 경영 / 정명호 저 / 삼성경제연구소 펴냄

 

 21세기의 초입에 접어든 오늘의 사회는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 우리의 예측과 기대를 벗어난 사건들, 서로 모순되는 현상들이 세계 곳곳에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다. 과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보수와 진보, 성장과 퇴보, 질서와 무질서라는 편리한 이분법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으로 변모해 버린 것이다.

 그 중 특히 눈에 띄는 현상은 세계화와 지방화의 동시적 공존을 의미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대량 생산과 소품종 주문 생산의 동시적 추구를 의미하는 대량 주문생산(mass customization), 전문화와 전문적인 영역 구분의 파기를 의미하는 유연 전문화(flexible specialization)처럼 이상스러운 것, 그럴 것 같지 않은 것, 잘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동시적으로 공존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경제·과학·기업경영 등 모든 분야에서 동시에 목격되고 있다.

 정명호의 ‘패러독스와 경영-합리성의 위기와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바로 이런 모순과 패러독스를 어떻게 보아야 하며,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다. 이 책의 저술 동기가 된 것은 오늘날 대다수의 경영자들이 특정의 문제 상황이나 의사결정 상황에서 습관적으로 무엇을 택일할 것인가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저자의 비판적 인식이다. 이들은 우리의 일터와 생활 곳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모순과 패러독스를 애써 외면하고 어떻게든 패러독스를 벗어나려고 노력할 뿐, 패러독스를 만드는 요인이 무엇이고 이것들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산업시대에는 외부 환경과 자사의 상황을 분석해 전략을 수립하고, 정해진 전략을 실행하며 그 결과를 계획해 비교 평가하는 방식이 성공적인 기업 경영의 지름길이었다. 경영자 또한 잘 훈련된 기능인처럼 이러한 ‘계획-실행-평가(plan-do-see)’의 절차에 따라 합리적 경영활동을 수행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패러독스의 시대에는 주어진 답 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 획일적인 이분법이나 흑백논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계획-실행-평가의 절차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추세가 미래에도 계속되리라는 선형적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비선형적으로 변화하는 오늘의 사회에는 이런 방식이 더 이상 큰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는 앞으로의 기업경영은 반드시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요소를 조화시켜 공존을 모색하는 ‘패러독스 경영’이 돼야 한다고 본다. ‘패러독스 경영’이란 양자택일식 선택을 지양하고 모순적인 요소를 함께 추구하는 경영, 일관성이나 합리성보다는 역설적인 요인을 공존시켜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 내려는 경영을 말한다. 세계적인 우수기업이나 오래도록 장수한 기업들은 한결 같이 변화와 안정, 원가와 품질, 장기적 시각과 단기적 시각을 대립적이거나 양자택일적인 문제로 보지 않고 공존시키는 패러독스 경영을 추구해 왔다.

 모순적인 대안의 상호관계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도록 하는 역발상과 뒤집기, 양면사고와 시스템사고, 공존과 조화의 모색 등은 패러독스 경영을 위한 선결 요건이다. 여기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패러독스 경영을 동양사상의 중용 개념에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동양사상에서 중용은 단순한 중간이 아니라 지나치거나 부족함이 없는 상태, 즉 역동적 균형의 상태를 말하는데 패러독스 경영도 바로 이같은 역동적 균형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 정보지식사회의 기업은 단순한 합리적 경영만으로는 성공은커녕 생존하기조차도 어려운 환경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산업경제시대의 원리를 상당 부분 부정하는 인터넷 경제가 부상하면서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인터넷 경제의 부상은 단순하게 인터넷에서 물건을 판매한다거나 기존의 사업에 거래선을 하나 덧붙이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진행중인 혁명이며, 어떤 기업도 이 혁명을 피해갈 수 없다. 인터넷 혁명은 우리에게 산업시대 이래 익숙한 엄격성, 폐쇄 구조, 포괄적인 주제, 중심 권위, 고정 가치 등을 포기하고 그 대신에 다원성·차이·불안정성·다양성·모호함·우연성·패러독스 등을 활용할 것을 요구한다.

 정명호의 ‘패러독스와 경영’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 또는 편협한 목적 합리성으로부터 결연히 단절하고 패러독스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사유와 행동 원칙을 체득할 것을 권고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예측 가능성과 불확실성, 규칙성과 불규칙성, 산업사회적 원리와 탈산업사회적 원리들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21세기의 복잡계를 풀어내는 훌륭한 단서이자 패러독스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유익한 행동지침서로 볼 수 있다.

 <김종길 덕성여대 교수 way21@duk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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