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삼성전자는 전자업계에서 보기 드문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자사의 무선핸드PC ‘넥시오’가 통신장애가 발생할 우려가 높아 이를 공개적으로 무상 수리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람의 생명과 직접 관련이 있는 자동차에서는 이같은 공개 리콜이 수시로 발생한다. 하지만 전자업계에서는 제품에 문제가 발견되더라도 브랜드에 대한 악영향, 리콜 비용 때문에 쉬쉬하면서 넘어가는 관행을 보여왔다. 소비자들이나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이번 리콜이 용기있는 행동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진대제 사장이 동계 CES쇼, 세빗전시회 등 세계적인 전시회에서 삼성전자의 차세대 디지털제품으로 넥시오를 중점 홍보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가 이번 리콜을 두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눈에 선하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이러한 용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이번 리콜은 퀄컴이 제공한 칩에서 결함이 발견돼 실시됐다. 삼성전자가 배포한 보도자료 어디에서도 이같은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보도자료에서는 한 중소기업이 삼성에게 공급한 통신모듈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돼있다. 실제 책임을 져야 할 퀄컴보다는 중소기업에 책임을 떠 넘긴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의 이동전화단말기 유통업체인 오디오박스는 퀄컴 칩 때문에 자사 단말기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밝히면서 곧바로 퀄컴을 지목했다. 어쩌면 같은 국적의 퀄컴보다는 오디오박스에 제품을 공급한 도시바나 교세라 등에게 이번 문제를 떠넘길 수도 있었지만 당당하게 문제의 본질을 직시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퀄컴의 세계 최대 칩 구매업체다. 연간 1000만개가 넘는 cdma 칩을 퀄컴으로부터 구매한다. 퀄컴 없이 삼성전자의 이동전화단말기사업이 오늘에 이르지 못했듯 삼성전자 없이 퀄컴도 세계 최대 이동전화 플랫폼업체로 발돋움하지 못했을 것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소니를 자산가치로 앞지른 우리나라 간판기업이다. 간판기업이라면 소비자, 고객, 협력업체에 당당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퀄컴에 당당하지 못하면 국내 어느기업이 퀄컴에 자신있게 나설 수 있겠는가.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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