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란 이익을 보기 위해 상대방을 죽이고 나 혼자만 살아남는 행위가 아니다. 장사(business)는 사람을 살리고 나도 살고 상대방도 사는 게 정도(正道)다.” 요즘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상도(商道)’의 주인공인 임상옥의 철학이다.
온라인 유통시대인 요즘에도 이같은 상 철학이 살아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죽어가고 있다’. 아직도 많은 수의 쇼핑몰들이 상품의 질과 서비스 내용을 차별화하기보다는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저가경쟁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남을 밟고’ 일어서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에서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됐던 각종 문제점이 그대로 온라인 시장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오프라인 유통에서와 마찬가지로 덤핑 판매를 한 뒤 자취를 감춘다거나 고객을 교언영색으로 유인하는 호객, 고객이 원하는 제품 대신 다른 제품을 판매하는 ‘찍기’ 등의 행위가 온라인 시장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아니 오히려 확산일로에 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탓에 인터넷 무대에서 상도는 오프라인 시장에서보다 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저가경쟁이 유죄인가=상도가 거론될 때는 으례 ‘가격전쟁’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남들보다 싸게 판매하면 그것은 상도를 어긴 것이고 남들보다 비싸게 판매하면 괜찮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적 판단은 자칫 이해당사자들 가운데 어느 한쪽을 편드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최저가판매라고 해서 무조건 상도를 어긴다고 볼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용산의 오프라인 가격과 비교해 제법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LG e샵이나 삼성몰 등이 ‘살길이 막막하다’는 한숨섞인 하소연은 할 수 있겠지만 아무도 그들을 상도를 어겼다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상도에는 윤리적인 측면이 주된 평가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탓이다.
일정범위 내에서의 저가경쟁은 시장경제 체제상 바람직한 일이다. 적정한 수준의 경쟁은 소비자들에게 양질의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업체 입장에서도 더 많은 매출을 올려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 되기 때문이다.
온라인 유통에서 야기됐던 몇몇 굵직한 사건들은 ‘적정한 수준’을 넘어서 가격경쟁이 갖고 있는 양면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지난해 여름 출판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인터넷 쇼핑몰들의 도서 할인판매는 소비자들로부터는 환영을 받은 반면, 출판업계로부터는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상도 결여 문제로 보지는 않는다. 상도덕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구조적인 변화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유통단계의 축소·마케팅비용의 절감 등을 통해 얻은 성과가 가격에 반영되는 것이다.
상도가 위협받는 경우는 종종 지나친 가격경쟁이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핵심요인들은 다른데 있다.
◇온라인의 비윤리적 행위들=전자상가에 나가 쇼핑을 하다 보면 고객을 따라다니며 “뭘 찾으세요? 일단 한번 상담해 보세요. 싸게 드릴게요”라며 잡아 끄는 이들이 있다. 호객(呼客)만을 전문으로 하는 호객꾼들이다. 호객은 소비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방해하고 매장으로 유도한 뒤 종종 바가지를 씌운다는 점에서 좋지 못한 상거래 관행으로 지적되고 있다.
매장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상인들 가운데는 소비자들이 찾는 제품 대신에 ‘품절’ ‘품질불량’ 등을 핑계삼아 이윤이 좋은 제품으로 돌려파는 ‘찍기’ 행위를 하는 이들도 적지않다. 이 찍기 역시 오프라인에서 정착된 대표적인 비윤리적 상행위다.
온라인상에서도 이러한 비도덕적 상행위가 판을 치고 있다. 각종 가격정보제공 사이트가 등장하면서 이들 사이트를 이용한 온라인상의 ‘호객’ ‘찍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실제로 가격비교 사이트에 최저가로 가격을 게재한 업체들 중 상당수는 소비자들이 직접 구매하려하면 “재고가 없다”며 유사상품 구입을 권유하거나 ‘부가세 별도’를 내세워 가격을 더 받는다. 가격비교 사이트를 통한 호객·찍기인 것이다.
이같은 문제도 심각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온라인이 현금 마련을 위한 장터로 변질, 역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 같으면 사채꾼들이 전자상가에서 현금을 필요로 하는 상인들을 상대로 꺾기·덤핑판매 등을 했지만 지금은 전자상가에서 많이 사라졌다. 현금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온라인 유통망을 현금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용산 사채꾼들을 만날 필요성이 없어진 탓이다.
대표적인 경매사이트인 옥션조차 지난해 ‘카드깡’으로 불명예를 안았을 정도다.
이렇듯 온라인 유통망이 현금조달을 위한 주요 덤핑사이트 역할을 하고 있으나 규제의 손길은 미흡하기 그지없다. 이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상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유통단계의 구조조정에서 자연스레 발생한 가격하락이 아니라서 대응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다.
◇신뢰받는 사이트만이 살아남아=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인터넷 가격정보 사이트인 베스트바이어(대표 김용수 http://www.bestbuyer.co.kr)가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사이트의 가격경쟁력을 분석한 결과 중소형 전문 쇼핑몰이 가격은 더 싸지만 이용률은 대기업계열의 종합 쇼핑몰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통신이나 컴퓨터 하드웨어 부문에서 가격이 중소 전문몰보다 싼 곳은 2∼3곳에 불과했지만 이용률 면에서는 인터파크·i39·LGe샵 등 대기업계열 쇼핑몰이 7개나 상위순위에 올랐다.
김용수 베스트바이어 사장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중소 전문몰들은 여전히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지만 대형 쇼핑몰들은 서비스와 신뢰도 향상으로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베스트바이어의 조사 결과는 항상 저가제품만이 통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컴퓨터 벤치마크 테스트 전문업체인 케이벤치(대표 김일기 http://www.kbench.com)는 각종 부품을 판매하고 있으나 다른 쇼핑몰에 비해 값이 싸지는 않다. 하지만 정확한 배송과 AS로 전자상거래 부문에서 많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김일기 케이벤치 사장은 “초기에는 인터넷 쇼핑몰들이 가격경쟁력으로 소비자들을 끌어들였지만 이제는 그동안 축적된 신뢰와 서비스에 따라 소비자들이 스스로 옮겨가고 있다”며 “경쟁력 있는 쇼핑몰들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말한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관계자는 “현재도 사이트 폐쇄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잇따르고 있고 약관의 미비, 배달지연, 과장광고 등이 여전한 상태”라며 “기본요건부터 확실히하는 것이야말로 온라인 상도를 지키기 위한 기초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영하기자 yh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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