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노기술 취재일정의 마지막날이 밝아왔다. 오전에는 일본 나노기술연구의 효시격인 JRCAT(Joint Research Center for Atom Technology)를 방문했다.
쓰쿠바 AIST연구소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JRCAT는 숙소에서 걸어서 불과 10분 거리. JRCAT는 지난 92년 일본 최초의 나노관련 국책연구사업으로 출발해 일본나노기술의 물적, 인적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는데 오는 3월 31일 사업종료와 함께 조직해체를 앞두고 있었다.
이처럼 목표를 정하고 한시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을 선셋(Sun set)시스템이라 하는데 동행한 KIST 임상호 박사는 신분보장이 어려운 국내 연구계에선 무척 보기드문 사례라고 설명한다.
건물현관에서 JRCAT의 일본식 명칭을 살펴보니 ‘아톰(원자)테크놀러지 연구체’라 적혀 있다.
아톰이라, 일본은 나노기술이란 말도 없던 10년 전부터 원자단위의 물질조작(나노)기술을 육성하기 위해 국가 규모의 대단위 연구프로젝트를 운영해온 것이다.
나노분야 후발국인 한국의 입장에서 JRCAT가 지난 10년간 총 250억엔을 투입하며 거둔 연구성과와 운영노하우는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었다.
특히 이 연구사업단이 축적한 나노단위의 조작기술은 최근 AIST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MIRAI(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계획:본지 18일자 AIST 기사참조) 프로젝트로 이어져 일본의 반도체산업계에 미친 긍정적 영향도 매우 크다는 평가다.
JRCAT 프로젝트리더인 다나카 카주노부 박사는 요즘 연구조직의 해체를 앞두고 그동안 경험을 담담하게 취재진에 설명했다.
뒤이어 극히 미세한 탐침(SPM:scanning probe method)으로 원자, 분자를 조작하는 기술분야를 담당하는 도쿠모토 히로시 박사가 자신의 연구그룹을 안내했다.
도쿠모토 박사는 취재진에게 머리카락의 5000분의 1 굵기인 카본나노튜브(CNT)를 AFM(원자력현미경)의 탐침끝에 붙이는 전과정을 비디오로 생생하게 보여줬다.
AFM은 원자단위의 관찰이 가능한 첨단 계측장비지만 같은 시료를 동일한 조건에서 측정해도 대부분 결과가 다른 문제점이 있다. 도쿠모토 박사는 기존 AFM의 탐침보다 한층 예리한 CNT를 접속시켜 분자구조를 한층 선명하게 관찰하고 신뢰성도 높이는 결과를 얻는데 성공했다. 바닥에 떨어진 콩알을 굵은 막대기로 주워담다가 가느다란 젓가락으로 대체했다고 보면 된다.
그는 이밖에도 원자, 분자구조를 새로운 방식으로 확인하거나 분자를 스스로 정열시키는(self-assembled)기술에 대해 많은 설명을 했다.
다음은 분자의 이론분석을 담당하는 우다 쯔요시 박사의 연구그룹을 방문했다.
우다 박사는 나노분야에서는 직접적인 분자조작연구 못지않게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이론연구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상물체의 크기가 분자단위로 작아지면 오차가능성이 큰 실험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나노구조의 성질을 이해하는데 더 정확한 경우가 많지요.”
그는 나노구조체의 화학반응을 시뮬레이션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는데 현재 10만종의 원자를 자유로이 붙였다 떼면서 새로운 물질특성을 미리 분석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 이러한 기술을 확보한 곳은 전세계에 JRCAT를 포함해서 3군데밖에 없다. 실제로 실리콘의 산화막이 형성되는 과정이 컴퓨터 동영상으로 구현됐는데 전자현미경으로 실험해봐도 똑같단다. 비싼 연구설비가 없이도 컴퓨터만으로 나노구조를 연구하는 시뮬레이션기술은 한국이 특히 주시해야할 분야였다.
*오후에는 AIST에서 2㎞가량 떨어진 국립물질재료연구소(NIMS:National Institute for Materials Science)를 방문했다. 일본에선 마지막 일정이다.
NIMS는 본래 정부예산으로 운영되던 금속재료 연구소와 무기재료 연구소를 지난해 4월 통합해서 만든 연구조직인데 각종 산업용 신소재 외에 나노분야에 대한 투자비중이 매우 높았다.
특히 인구 2만의 소도시가 사용할 전력을 한꺼번에 소모하는 고전압 자기장연구설비와 집채보다 더 큰 초대형 전자현미경(TEM)을 비롯한 방대한 연구시설규모는 기를 질리게 했다.
이곳에서도 진행되는 나노연구는 여타 연구소와 중복되는 사례가 많아 보였다.
여기서 만난 소재물리그룹의 호노 카즈히로 박사는 원자수준의 미세 재료구조를 APFIM (Atom Probe Field Ion Microscopy)이란 기술로 관찰하는데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APFIM은 가속된 이온을 재료표면에 때린 뒤에 반사되는 형상을 관찰하는 방법인데 이제껏 개발된 어떤 기술보다도 원자수준의 미세구조와 조성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데 효과적이다.
호노 박사는 신물질을 만들거나 기존 물질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자신의 나노분석기술이 매우 효과적이며 한국기업과의 공동연구에도 관심이 많다면서 매우 진지하게 얘기를 끌고 나갔다.
NIMS는 지난해 새로운 독립법인이 되면서 정부조직의 관리를 벗어났다. 외부기관, 외국과도 공동연구가 자유롭게 되면서 그룹별로 연구예산 확보에 적극 나서는 분위기로 변한 것이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사진; 일본 국립 물질재료연구소(NIMS)의 초대형 전자 현미경(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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