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삼성네트웍스 박양규 사장

 

 28년 전 대학 화학공학과를 갓졸업하고 제일모직에 입사해 첫 1년을 제외하고 삼성의 소프트웨어 사업과 함께 해온 사람. 결국 삼성그룹 정보통신계열 회사(삼성네트웍스·옛 유니텔)의 최고사령탑에 앉은 사람. 그는 어떤 사람일까. ‘컴퓨터처럼 냉정하고 깐깐한 사람’이라고 상상한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답안이 될 것이다.

 주인공인 삼성네트웍스 박양규(54) 사장은 직선적인 사람이다. 명함을 건네받은 기자가 “대표이사 중에는 명함에 이동전화번호를 적어놓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하자 “그 전부터 쓰던대로 했다”며 무신경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요즘 명함에 e메일 주소와 이동전화번호가 없으면 안되는 것 아니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평사원에서 CEO가 되기까지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전과들을 자랑해 달라는 주문에 “한가지 사업을 따내고 성공을 이끌 때마다 반대쪽에는 기회를 빼앗긴 상대가 있다”며 도무지 말을 하지 않는다.

 지장(智將)과 덕(德)장, 용(勇)장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에 ‘지장’을 선택한 박 사장은 “덕장과는 거리가 멀다”고 스스로 말한다. 일 얘기할 때는 잘 웃지도 않는다. ‘무뚝뚝한 스타일이고 표현이 직설적이어서 상대방이 인격적인 모욕을 느끼지 않을까 신경을 쓸’ 정도다. 한마디 한마디 신중하게 뜸들이며 대답하는 그는 정확한 표현을 위해 말을 아꼈다.

 그러던 그의 말이 갑자기 많아졌다. 회사의 경쟁력과 비전을 설명하면서부터다.

  “삼성네트웍스 최대의 경쟁력으로는 우선 사람을 꼽을 수 있습니다. 540명의 네트워크 기술자, 87년부터 15년째 네트워크 사업분야에서 쌓아온 조직의 경험이 탁월한 경쟁력을 발휘합니다. 둘째는 삼성이라는 조직문화가 가진 교육과 탄탄한 체계가 힘이 될 것입니다. 삼성네트웍스는 이러한 경쟁력을 기반으로 네트워크에 가치를 실현해내는(World Class Value Provider on the Net) 사업목표를 달성할 것입니다.”

 “전문가 집단인 삼성네트웍스는 네트워크에 대한 전문성은 뛰어난 반면 사업에 대한 센스와 영업력 등이 부족합니다. 사원 전체의 마인드를 바꿔 직원들을 기술자에서 사업가로 바꿀 생각입니다. 그래야 80%에 이르는 삼성관계사 대상 매출 비율을 줄이고 대외매출 비중을 50% 이상으로 늘려갈 수 있습니다.”

 박 사장은 삼성네트웍스의 새로운 도전으로 영업력 강화를 통한 체질변화를 꼽았다.

 반면 그는 스스로 표현하듯 보리밥, 김치, 된장을 먹는 평범한 사람’이다. ’분석과 해결’이라는 표현보다 ‘경멸과 오기’라는 뜨끈뜨끈한 표현이 앞서는 대목에선 사람냄새가 물씬 풍긴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작은 체구만 보면 ’삼성그룹 정보통신부문 리더’와의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컴퓨터와의 27년 인연도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다. 그것도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때 당시 제일 잘나가던’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석유화학에 들어가길 원했던 박 사장은 석유화학에서 사람을 거의 뽑지 않는 바람에 제일모직에 입사하게 됐다. 공장근무를 원하던 박 사장이 처음 배치된 곳은 수출부. 내심 수출부 근무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박 사장은 우연한 기회에 전산쪽에 발을 들였다. “수출부에서 1년 근무를 하던 중 그룹 전산화 업무 지원자를 뽑는데 손을 번쩍 들어서 컴퓨터와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컴퓨터와의 첫 대면은 ‘경탄’ 대신 ‘경멸과 오기’로 시작됐다. “처음에는 정말 실망이 컸습니다. 그야말로 되는 게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제일모직의 옷감 입출고관리시스템은 옷감에 천공카드를 스테이플러로 고정시켜 분류하는 체계로 운영됐다. 부산공장에서 옷감을 입출고 하면 천공카드는 고속버스에 실려 서울로 향했다. 관리내용은 텔렉스나 전화로 주고받았다. 천공카드를 읽는데 오류가 많고 심지어 천공카드가 옷감에서 떨어져 버리기 일쑤라 불편만 커질 뿐이었다. 박 사장은 그야말로 ‘오기’로 전산시스템 구축을 이뤄냈다.

 제일모직 전산부에 8년간 근무한 박 사장은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개발부와 삼성물산 시스템사업본부를 거쳐 삼성SDS 설립 때에는 핵심 멤버가 됐다. 다시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사업팀, 삼성자동차 전략정보팀, 삼성SDS 상무를 지나 지난 1월에 삼성네트웍스의 대표이사에 오른 것이다. 27년이나 동고동락했으면 이제 너그러워질만도 한데 그는 “아직도 컴퓨터는 상당히 불편하다“며 남은 오기를 부릴 태세다.

 박 사장은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대표이사로서의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시선과 기대에 대한 책임, 전문경영인으로서 주주들에 대한 책임과 부담, 경쟁력있는 회사로 키워내기 위한 스스로의 자존심”이 박 사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동석한 직원은 그에 대해 “무뚝뚝하고 신중한 모습 뒤에 큰 의지가 숨어 있고 또 우직한 정이 배어 있다”고 귀띔했다. 몇몇 사업추진에서 불 같은 추진력으로 큰 성과를 거둔 일들도 소개했다. 박 사장도 “일을 하다보면 잘 웃지도 않고 냉정하게 처신하는 부분도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따뜻하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이 가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며 은근히 맞장구를 친다. “저도 보리밥, 김치, 된장을 먹는 보통사람입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더라 그렇게 써주세요.” 박 사장의 부탁이다.

 박 사장은 경영지침서를 주로 읽는다. 소설 같은 문학작품도 재미있지만 시간이 허락지 않는다. 박 사장은 지금 엘리 골드렛과 제프 콕스가 지은 더 골(The Goal)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80년대 후반 미국내 제조업계에 새로운 혁신을 불러일으킨 책이라고 한다. 그 전에 읽었던 책은 겅호. 이 역시 한 조직에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혁명적인 노하우를 담고 있다. 삼성네트웍스의 방향타를 잡은 지 석달째. 차가운 꼼꼼함과 뜨거운 의지로 준비한 박 사장의 혁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때다.

 

 

 △48년생 △67년 진주고 졸 △74년 제일모직 입사, 부산대 화학공학과 졸업 △78년 제일모직 전산부 시스템개발과장 △83년 삼성전자 컴퓨터사업본부 SW개발부장 △85년 삼성데이타시스템 SW개발부장 △90년 삼성데이타시스템 개발본부장 겸 기술연구소장 이사 △97년 삼성자동차 전략정보팀장 상무대우 △99년 삼성SDS BI디비전장 상무이사 △2002년 삼성네트웍스 대표이사 사장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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