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피아>전자 민주주의가 오고 있다 : 김종길 교수

 ◆전자민주주의가 오고 있다 / 박동진 지음 / 책세상 펴냄

 

 컴퓨터에서 개인 작업을 하면서 별도의 방해 없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요한 경제적·정치적 사건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오늘날의 정보 환경은 참된 민주주의의 구현이라는 인류의 오랜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고 있는 듯 보인다.

 현실 공간에서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수많은 집단이나 개인들이 인터넷 공간에서는 각자의 관심과 주장을 가감 없이 표출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정의 정책사안에 대해서도 즉석여론조사·시민배심원제도 등을 통해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반응함으로써 민주적인 공론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인터넷과 이를 매개로 형성된 사이버공간이 사회적 공론 형성과 참여 민주주의의 확대에 ‘순기능’을 할 지, 아니면 오히려 ‘역기능’을 초래할 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양방향성·익명성·개방성을 특징으로 하는 사이버공간의 확장으로 비로소 인류가 풀뿌리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의 원형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는 낙관론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사이버공간의 익명성과 불확실성이 언어 폭력의 난무, 쓰레기 정보의 범람, 네티즌간의 과도한 갈등과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쪽도 있다.

 박성진의 ‘전자민주주의가 오고 있다’는 이러한 문제의식과 함께 이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한 젊은 정치학자의 진지함이 배어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금까지의 정보사회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을 시도할 뿐 아니라 정보사회의 민주주의가 지니는 실천적 의미를 제시한다. 구체적으로 민주주의의 개념적 뿌리와 본원적 의미에 대해 천착하고 있고 현재 학계와 사회 일반에서 논의되고 있는 민주주의 및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을 조목조목 정리하고 있다. 이로부터 저자가 의도하는 바인 전자민주주의의 실천적 의미를 도출해 내고자 시도한다.

 저자는 이미 다양한 차원에서 조망된 바 있는 전자민주주론의 주요 내용과 한계를 지적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전자민주주의를 얘기하는 대부분의 논자들이 자유주의적 정치관의 기본 틀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 논의 자체도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책 곳곳에서 강조하는 바는 전자민주주의를 시민 참여의 수적 증가나 전자투표제의 시행이라는 절차적 차원의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이같은 방식의 단편적 이해는 참여자의 역동적 토론과정을 무시함으로써 공적인 문제에 관해 숙고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사회를 위한 도덕적 책임감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그런 만큼 소외계층이 없는 민주주의의 실지(失地) 회복을 위해서는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

 이런 시각에서 저자는 전자민주주의가 소수의 억압적 권력에 저항하는 담론이라는 차원에서 새로이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정보사회라는 새로운 국면 아래 시민사회가 정치사회를 재구성하는 대항 헤게모니적 기제로서의 민주주의와 억압적인 소수 권력을 근본적으로 타파하는 차원에서의 전자민주주의가 고려돼야 한다.

 저자는 이 모든 가능성의 단초를 정보화의 진전에 따른 민주주의의 의미 변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기술적 잠재력의 확대에서 찾고 있다. 직접민주주의로서 전자민주주의는 첫째로 대의제민주주의 혹은 자유주의적 참여민주주의의 대안으로서, 둘째는 소수의 억압적인 지배를 낳는 권력 관계를 지양하는 대안으로서, 셋째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논술을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으로서 새로운 과제와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유감스러운 점은 ‘전자민주주의가 오고 있다’라는 책 제목에서 풍기는 미래 정보사회의 정치에 대한 희망에 찬 예단과 책머리에서 천명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민주주의와 관련한 자신의 의욕적인 시도와 야심 찬 의도를 책 속에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저자가 이 책의 서두에 표방하고 겨냥했던 책 저술의 동기와 목표가 제대로 달성됐는지 조차 지극히 의심스럽다. 소수의 억압적 권력에 대한 저항의 필요성이라는 동어 반복적이며 규범주의적인 강조 이외에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이를 통해 구현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이 이 책의 어느 곳에서도 어렴풋하게 나마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간결하고 압축적인 논술이 특징일 수밖에 없는 문고판 책의 한계를 감안할 때 정보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현하고 확대시켜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하나만으로도, 정보사회의 정치에 대한 성급한 낙관론이나 비관론을 모두 경계하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해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정보시대 정치의 밝은 미래를 꿈꾸는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김종길 덕성여대 교수 way21@duk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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