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방송용 애니메이션 산업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 강한영 회장

 

 지난 98년부터 시행된 국산 TV애니메이션의 의무방영제는 국내 방송용 애니메이션 산업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 당시 의무방영제의 골자는 방송사의 총 방영시간 중 일정 시간 이상을 국산 애니메이션으로 의무적으로 편성하는 총량제였다. 이 정책은 침체됐던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 제작을 촉진시켰고,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 위주로 편성돼 왔던 방송 관행을 수정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지난 2000년에 방송법 개정 과정을 거치면서 국산 애니메이션 의무방영제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의무방영제는 총량제가 아니라 ‘전체 애니메이션방영 중 45% 이상을 국산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하게 됐다. 절대시간 이상으로 국산 애니메이션을 편성할 의무가 없어진 것이다.



 이러한 개정 방송법의 문제는 최근 들어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방송사가 전체 애니메이션 방영시간을 줄이면서 상대적으로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의 방영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의 조사에 의하면 방송 3사의 98년부터 2000까지 평균 애니메이션 방영시간(창작물·외화 포함)은 주당 334분이었으며, 2001년에는 309분, 2002년에는 258분으로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애니메이션 산업은 문화 산업에서 허브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그 파급 효과가 매우 중요하다.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의 순수 제작 매출액은 약 2500억원대로 집계되며, 게임·캐릭터·음반 등 애니메이션과 직접 관련돼 파생된 산업규모는 약 1조50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런 통계치를 보아도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산업적 의미는 충분히 강조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산업의 발전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위상을 점하고 있는 곳은 당연히 방송사다.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아무리 열심히 제작을 해도 방영권을 갖고 있는 방송사에서 애니메이션 편성 시간을 줄일 경우 작품은 사장될 수밖에 없다.

 만일 방송사들이 지금과 같은 편성정책을 지속할 경우 업계는 심각한 상황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또 관련 문화산업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 몇 년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문화산업 발전 전략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또 방송용 애니메이션 산업의 발전과 관련해 지적되어야 할 문제점이 방송사의 애니메이션 편성시간대다. 현행 시간대는 오후 5시에 집중돼 있으며 일부 방송사는 오후 4시에 편성하기도 한다. 이 시간대는 아무리 우수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도 시청률이 높아질 수 없다. 특히 최근의 애니메이션 주 시청자는 유아에서 청소년층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이는 선진국에서 이미 입증된 시청 관행이다. 국내 제작사들도 이러한 관행에 맞춰 세계 시장을 겨냥한 청소년 물을 많이 기획·제작하고 있으나 국내 방송사의 편성 관행이 퇴행하고 있어 커다란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 만화전문 사이트에서 설문 조사한 내용을 보면 청소년들의 절대 다수가 청소년용 애니메이션의 경우 저녁 7시 30분 이후로 시간 배치를 요구하고 있으며, 쇼나 오락 프로그램보다도 경쟁력이 있다고 응답했다. 시청자들의 요구는 이렇게 변해 가는데 방송사는 아직 유아를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 편성에만 관심을 갖고 있어 국내 방송용 애니메이션 산업 발전에 또 다른 장벽이 되고 있다.

 애니메이션은 단순하게 오락적 기능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문화적 감성을 담은 우수한 애니메이션 한 편은 우리 청소년들의 세계관에도 적극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기에 프랑스·중국 등 각 국에서는 강력한 자국산 애니메이션의 의무 방영제를 시행하고 있다. 아울러 우수한 애니메이션 작품에 방송사가 선투자를 하는 제작 쿼터제도 병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방송사들도 이렇게 변화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적극적인 애니메이션 편성 및 제작 정책이 있어야 방송용 애니메이션 산업이 육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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