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때문에 공간이 살해당했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시간밖에 없다.’
독일의 서정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1843년 파리에서 루앙과 오를레앙을 잇는 노선이 개통됐을 때 철도 때문에 겪는 공간 개념의 혼란에 대해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전율’이라고 표현했다.
기차가 아는 것은 출발, 정지 그리고 도착뿐이다. 출발→정지→도착의 공간 이동을 알려주는 표지판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기차는 이정표만 기억할 뿐 그 사이 공간은 완전히 무시한다. 한마디로 기차의 빠른 속도는 새로운 공간을 열었지만 그것은 그 사이 공간을 없애 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만약 하이네가 160년 정도 더 지나 지금의 인터넷을 봤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인터넷 때문에 시간이 살해당했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인터넷이 요구하는 것은 오로지 ‘클릭’뿐이다. 사이버 스페이스의 공간 이동을 알려주는 표지판은 너무 가까이 있다. 그 하이퍼링크의 이정표는 시간을 완전히 무시한다. 리얼타임의 세계다. 기차가 이정표 사이의 공간을 없애 버렸다면 인터넷은 이정표 사이의 시간을 없애버린 것이다.
공간이나 시간에 대해 ‘파괴’라는 표현은 19세기 초부터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기차로 인해 속도 개념에 혼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속도는 공간과 시간의 관계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당시까지 말이나 마차를 타고 다닐 때 속도는 오로지 감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속도는 원래 보이고 들리며 느껴지는 것이었다. 시뻘개진 말의 눈동자와 거친 숨소리로 벌어진 콧구멍, 규칙적인 발굽소리와 덜컹거리는 바퀴소리 그리고 자신의 몸이 흔들리는 정도에 따라 속도를 가늠했던 것이다. 기차는 속도를 감각에서 숫자로 바꿔놓았다. 19세기 중반 기차의 속도는 시속 32∼48㎞ 정도. 당시 우편마차가 시속 13㎞였으니 3배 정도 빨랐다. 속도가 차츰 빨라지면서 인간은 속도계를 보지 않고는 속도를 알 수 없게 됐다. 몸의 시공간 개념에 혼란이 생긴 것이다.
인터넷은 속도를 다른 차원의 숫자로 바꿔놓았다. 기차를 규정하는 공간과 시간의 기준이 미터(meter)와 초(second)라면 컴퓨터를 규정하는 공간과 시간의 기준은 비트(bit)와 헤르츠(㎐)다. 이에 따라 인터넷의 속도는 56Kbps, 1.544Mbps, T1, E1, ISDN, ADSL 등 ‘귀신 씨나락 까먹는’ 차원으로 옮아갔다.
영어로 ‘사고(accident)’는 우연의 동의어였다. 산업사회 이전에 재앙은 홍수, 가뭄, 벼락, 폭풍처럼 자연적인 것이었기에 사고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산업사회들어 사고는 기계장치의 피로나 인간의 실수로 인한 당연한 결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궤도(철길)를 따라 가는 철도여행은 당시 기계론적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당시 철도여행은 기차라는 총알을 타고 발사되어 시공간을 관통,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으로 비유됐다. 승객들은 기차가 선로에서 벗어나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를 ‘철도공포’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에서 ‘사고’라는 단어는 무의미하다. 재생하거나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재생을 뜻하는 접두사 ‘re’의 세계다. ‘reset’ ‘replay’의 세계다. 모든 것은 클릭 한번으로 지우거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미리 포장된 햄버거와 콜라처럼 언제든지 또 얼마든지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인스턴트 시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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