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첨단로봇도 근원을 따져보면 어린시절 갖고 놀던 장난감에서 그 원형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우스운 얘기지만 엄청난 국가예산으로 개발한 특수로봇이 알고 보니 시중에서 파는 싸구려 장난감과 거의 구조가 똑같더라는 외국사례를 보면 현대 로봇산업에서 완구(자동인형)가 문화,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점이 쉽게 드러난다.
요즘 많은 어린이가 PC게임에 열광하면서 전통적인 완구시장은 주춤한 상황이지만 눈을 깜박이는 공주인형, 변신 합체로봇 같은 추억의 장난감은 최신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화려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토이 로봇이란 새로운 첨단완구시장이 급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나오는 토이로봇은 강력한 마이크로칩과 음성센서, 다관절모터를 이용해 제법 근사하게 살아있는 흉내를 낸다. 이런 추세로 완구기술이 발달하면 머지않아 어린이들은 장난감을 갖고 놀 때 공상을 하거나 혼자서 이야기할 필요성이 거의 없어질 것이다. 말이 통하고 주인의 행동에 반응하는 장난감(토이로봇)은 굳이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어린 아이에겐 엄연한 인격체기 때문이다.
부모에겐 몹시 곤혹스런 일이겠지만 향후 아이들이 사달라고 조르는 최고급 토이로봇은 심할 경우 소형차 한대값과 맞먹을 전망이다.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부모를 대신해 자녀에게 잔소리를 하고 위험한 사고상황을 신고하며 가정교사로서 웹상의 교육콘텐츠까지 전달하는 지능형 토이로봇이라면 비싸도 살 만하지 않겠는가. 아이와 놀아주는 토이로봇이 미래 가정생활에서 투자대비 효용성을 인정받아 거대시장을 형성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일본 소니의 로봇강아지 아이보는 첨단 토이로봇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 만하다. 강아지와 너무도 흡사한 이 토이로봇은 순식간에 세계적인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오로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매력덩어리로 나온 아이보는 로봇업계에 신선한 충격이었고 나이든 어른까지 빨아들이는 제품 컨셉은 토이로봇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
뒤이어 완구산업에서 돈 냄새를 맡은 로봇업체들이 달려들어 토이로봇을 경쟁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한국로봇업계도 예외없이 토이로봇 개발에 한꺼번에 매달리면서 바야흐로 세계 완구시장은 로봇 전국시대에 접어든 느낌이다.
그러나 장난감 기술의 발달이 반드시 어린이의 행복을 더해주는 것은 아니다. 완구의 목적인 어린이의 즐거움이란 관점에서 볼 때 전통적인 딱지놀이와 첨단 로봇강아지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봐야 한다. 모든 완구가 그렇듯이 ‘살아있는 토이로봇’도 어린이에게 한시적인 기쁨을 주고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장난감이라는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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