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확정한 벤처기업 건전화 방안은 기존의 벤처육성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되 벤처의 옥석을 가리는 시스템으로 대폭 전환됐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는 ‘무늬만 벤처’로 불리는 사이비 벤처를 창업 초기에 발견, 벤처비리 발생 소지를 없애고 기술력있는 벤처를 적극 발굴, 집중 지원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벤처인증평가를 2단계로 강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성장기에 접어든 벤처 지원을 위한 인프라 구축 방안도 이번 제도 개선에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다. 정부는 지난 97년 벤처육성정책 시행 후 5년간 창업 초기 업체를 중심으로 한 기술 및 자금 등 인프라 구축에 초점을 맞춰 왔다. 하지만 당시 창업한 업체들이 성장기에 속속 접어들면서 이에 대한 정책 개선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번에 마련한 벤처기업 신시장 창출 사업은 성장기에 들어선 업체들의 기술 개발에서부터 제품 판로를 안정적으로 이끌고 가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벤처인증기준 강화=그동안 벤처 확인에 따른 인증기준을 둘러싸고 평가의 객관성 및 형평성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제기돼 왔다. 정부가 벤처 확인시 수치기준에만 치중해 ‘무늬만 벤처’ ‘허약한 벤처’의 선별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이같은 문제점 개선을 위해 정부는 벤처확인기준을 혁신능력과 기술력 위주로 대폭 개편·보완한 방안을 내놨다.
이번에 도입키로 한 ‘벤처인증 자가진단시스템’은 벤처의 혁신성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평가 시스템이 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벤처인증평가기관과 이노비즈 추진 실무팀 등 10여명이 주축이 된 태스크포스를 구성, 지난 97년 OECD가 오슬로회의에서 개발한 ‘기술혁신접근시스템’을 기초로 우리 실정에 맞는 평가항목과 평가방법을 재구성한 평가체계를 마련중에 있다. 이같은 2단계 인증평가기준은 신규로 벤처확인을 받으려는 업체와 기존 벤처로 확인받은 업체들에 모두 적용된다. 이미 벤처로 확인받은 업체들이더라도 확인기간이 만료돼 재확인을 받으려 할 경우 강화된 기준에 따라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 부처협의를 거쳐 늦어도 오는 4월부터는 이같은 시스템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중기청은 그러나 기존 1만1000여개의 벤처 가운데 적어도 75% 이상의 업체가 이 평가시스템을 통과할 수 있도록 평가기준의 눈높이를 설정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정부가 향후 벤처육성정책을 ‘부정적’이 아닌 ‘긍정적’인 차원에서 이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재표명한 것이다.
◇벤처성장 인프라 구축=벤처기업 신시장 창출 사업은 그동안 막혀 있던 정부조달시장을 적극 개방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 82년 미국이 NASA를 비롯한 주요 연구기관과 대학에서 스핀오프된 업체 지원을 위해 도입한 ‘SBIR’사업을 벤치마킹했다. SBIR사업은 미 정부가 선정한 기술개발품목에 따라 개발업체를 선정, 기술개발에 필요한 R&D자금을 지원한 후 제품이 개발되면 5년간 그 제품을 구매해 주는 사업이다. 정부는 이같은 사업이 국내성장기업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라고 판단, 우선적으로 군수품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현재 수입에 대다수 의존하고 있는 군수물자를 대상으로 국내 기술개발이 가능한 물자품목부터 선정, 사업자를 선정해 제품 개발에 따른 자금을 지원한 후 개발제품을 시범적으로 구매한다는 계획이다.
◇반응=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은 “기술혁신능력 평가를 핵심으로 한 벤처 입퇴출요건 강화가 부실벤처를 솎아내고 우수기업 중심의 시장 지향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후속조치로 정부와 시장의 다리역할을 하고 민간중심의 기업경쟁력 제고와 자율규제를 위한 기구 설립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금룡 인터넷기업협회장은 “무용론이 제기됐던 벤처확인제도를 보완·강화해 벤처의 옥석을 가리고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다산다사의 벤처생리를 볼 때 이것이 향후 신생벤처의 발굴·육성에 장벽이 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사전 및 사후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만들었지만 이로 인한 행정비용의 부담도 크다”고 지적하고 “이른 시일안에 확인제도를 폐지하고 벤처캐피털 및 코스닥 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시장이 벤처를 육성토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벤처캐피털 투자가 대부분 단기 투자회수가 가능한 업종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벤처캐피털 투자기업을 중심으로 확인제도를 강화하면 결국 인기 업종을 중심으로 확인·지원이 이뤄져 산업불균형이 나타날 수 있다”며 “장기적 투자와 지원이 필요한 전략산업군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문제점=일부에선 2개월간 부처에서 준비한 개선안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띌 만한 제도 개선안은 찾아볼 수 없다는 입장이면서도 벤처 혁신성 검증을 위한 벤처인증자가진단시스템의 평가항목 구성 여부에 관심이 높다. 정부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진행하고 있지만, 과연 부실벤처를 가려낼 수 있는 평가시스템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적용시점도 불분명하다. 적어도 4월안에는 새로운 평가시스템을 적용한다는 계획이지만 법 개정 절차가 남아 있어 실제 시행 시기는 정부도 제대로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이번 개선안에 올려졌다 삭제된 국민연금의 벤처투자 확대 유도 및 공무원·교직원 연금의 벤처투자 허용방안도 부처간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반영하는 부분이다. 벤처기업활성화위원회는 삭제 이유에 대해 행정자치부나 보건복지부 등과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는 충분한 협의를 거쳐 제도 개선안을 발표하겠다는 정부의 당초 의지에서 크게 벗어난다. 개선안 마련 과정에서부터 부처간 손발이 제대로 맞지 않고 삐걱거리고 있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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