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판 ‘빅브러더’가 화제다.
외신은 워싱턴DC 경찰 당국이 의사당을 비롯한 공공건물 주변에 카메라를 설치해 통행인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고, 쇼핑몰·아파트 등의 감시카메라 화면과도 연계해 활용키로 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워싱턴 거리를 거니는 사람은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처럼 자신도 모르는 새 감시를 받게 됐다.
9·11테러사태에 놀란 미국 정부의 조치를 이해할 만하다. 허나 누구든 이 소식을 접한다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조치는 공공의 안녕과 테러예방이란 명분 아래 이뤄진 만큼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를 바다 건너 국민의 사생활 침해로만 보기엔 사안의 중대성이 결코 적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워싱턴 경찰은 이미 200만대의 감시카메라가 전국에 설치돼 있는 영국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영국의 조사결과조차 공공장소의 감시카메라 설치와 개인생활 침해에 대한 문제점을 분명히 확인시켜 준 바 있다.
심슨 가핑켈의 ‘데이터베이스제국’이란 저서에 소개된 영국 헐대학의 연구결과는 충격적이다. 이 대학은 지난 97년 감시센터 카메라 조작자가 카메라 조작 및 비디오 모니터를 통제할 수 있는 888가지 사례를 조사했다. 그 결과 감시카메라(조작자)는 뚜렷한 이유없이, 상당히 체계적으로 젊은 흑인 남성을 대상으로 삼았다. 정작 이들은 범죄와 무관한 사람이라는 점이 입증됐다. 카메라는 조작자의 주관에 따라 범죄를 일으킬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나 단정치 못한 차림새를 가진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처럼 감시카메라는 테러 용의자 색출이란 본연의 목적 외에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일부 젊은이를 정부의 고압적 통제 속에 몰아넣을 수 있는 등 양날의 칼이 되고 있다.
워싱턴만큼은 아니지만 서울에서도 필요에 의해 이제 많은 ‘빅브러더’의 아류가 나타나고 있다. 서울의 목욕탕들은 “분실사고가 잦아 손님의 원성을 산다”며 예사로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다.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취객 대상의 소매치기를 예방하기 위해 전동차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는 독자투고가 신문 지상을 장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워싱턴이나 서울이나 원하지 않는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비디오 화면이 누군가에게 유출되는 데 대한 위기의식은 거의 없는 것 같다.
3년 정도 됐을까. 온나라가 개인통신의 자유침해 여부를 두고 온통 벌집 쑤신 것처럼 들썩거린 일과 큰 대조를 이룬다. 안전한 것으로 여겨지던 이동전화까지 도·감청에 무방비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부랴부랴 통신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직 감시카메라를 통한 개인 이미지 정보의 유출에 대한 기준이나 법률은 없다.
우리가 점점 소설 ‘1984년’에서처럼 ‘모든 동작이 세세히 감시되고 있다는 전제 아래 살아가야 하고 또 그게 본능으로까지 습관화된’ 생활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집밖에 나와서 돌아올 때까지 감시 속에 살게 될 수 있다’는 가정이 불합리하다면 정부는 영국의 지역위원회가 감시카메라 설치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는 점에 착안해야 한다. 또 정보보호 관련 법의 범위를 확대하고 감시카메라에 의한 영상 데이터의 판매 및 양도 기준이나 지침, 감시카메라 운영자 교육 등에도 신경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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