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유럽-대형 케이블업체 과도한 부채로 `기우뚱` 통신시장 `새판짜기` 가능?

 유럽의 케이블업계를 대표하는 NTL과 유나이티드 팬-유럽 커뮤니케이션스(UPC)가 과도한 부채를 이기지 못해 부도처리되거나 회사를 매각할 것이라는 루머가 끊이지 않고 있어 이들의 장래와 관련된 유럽 통신업계 전반의 재편 가능성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유럽 케이블업체들의 부채가 과다하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유럽의 케이블 시장 자체가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간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한 데다 최근에는 디지털 TV나 초고속인터넷서비스를 둘러싼 신규 케이블 설치비용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추세여서 거대 케이블업체일수록 금융권으로부터의 자금차입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시장 구조기 때문이다.

 최근 터져나온 NTL과 UPC의 부채문제는 이런 케이블업계 전반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지난달 런던 금융시장에서는 유럽과 미국의 다국적 통신미디어업체인 NTL이 1월 31일 도래한 6400만파운드의 은행이자를 지불하지 못해 곧 파산 절차를 밟을 것이란 루머가 돌았다. NTL의 총부채가 120억파운드(24조원)에 달한다는 점에서 NTL 도산 시 영향은 미국 엔론사태의 파장을 능가할 것이란 긴장감이 팽팽했다. 이런 루머는 NTL이 당분간 도래하는 은행 원리금 상환용 현금자산을 이미 확보했다고 공시함으로써 일단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NTL의 부채가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난 상태며, 만일 NTL이 부채삭감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도산이 불가피할 것이란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에 따라 NTL은 모건스탠리 등을 주간사 은행으로 선정해 채권단과의 부채구조 개선 협상, 가능한 일체의 자산매각, 부채의 주식전환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NTL의 부채문제가 거론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유럽 최대의 케이블업체인 UPC가 총 75억유로의 기존 채무를 주식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함으로써 유럽 통신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번 결정으로 현행 UPC의 최대 채권자인 미국의 리버티미디어가 주식지분의 대부분을 소유하는 기업의 새 주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UPC가 지난 2월 1일로 만기가 도래한 6900만파운드의 채무이자를 변제하지 못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충격은 더욱 증폭됐다.

 NTL이나 UPC의 사례에서 보듯 유럽 케이블업계의 부채는 이미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느낌이다. 이에 따라 그 파장 역시 만만치 않다. 우선 유럽 케이블업계의 지배구조가 변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UPC의 경우처럼 미국의 거대 미디어업체들이 보유채권을 무기로 유럽 케이블업체들을 직접 통제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로 유럽의 여타 통신업체들도 부채줄이기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달 프랑스텔레콤이나 도이치텔레콤, 스페인의 텔레포니카 같은 유럽 유수의 통신업체 주가가 일률적으로 15% 이상 대폭 하락했다. 유럽과 미국 금융시장에서 이들의 채무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이들의 과다채무 보유를 이유로 텔레포니카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하향조정하는 한편 프랑스텔레콤의 신용등급은 기존의 BBB+를 유지하되 그 추이를 예의 주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채무줄이기는 모든 유럽 통신업체에는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텔레포니카가 3년 내 30억유로에 달하는 기존 채무를 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한 것이나 도이치텔레콤이 보유하고 있는 케이블 망을 미국 리버티미디어에 서둘러 매각하려 시도하고 있는 것도 모두 이 같은 이유에서다.

 현재와 같이 침체된 유럽 통신시장에서는 이런 거대기업들의 부채줄이기가 결국 대규모 보유자산 매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번 NTL과 UPC 사태는 이래저래 유럽 통신시장 재편을 촉진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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