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만큼 정부정책을 사시(斜視)로 보는 나라도 드물다. 많은 정책 추진주체(공무원)들이 억울해 하는 대목이지만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정권 안위차원의 전시 행정에서부터 부처간 밥그릇 확보용에 이르기까지 워낙 많은 구호성 정책에 질려온 탓이 크다.
하지만 좀 애매한 경우도 있다. ‘정책의 오버’가 그것이다. 70∼80년 개발독재시대엔 효율성을 앞세운 과잉정책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다원화되면서 정책이 시장을 이끄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오히려 시장과 충돌을 빚으면서 정책 취지 자체가 훼손되는 사례가 많아졌다. ‘정책 만능주의’에 익숙해온 추진주체들이 ‘시장은 항상 옳다’라는 자본주의 핵심명제를 너무 간과한 탓이다.
어찌보면 지금 몸살을 앓고 있는 벤처정책의 실책도 ‘재벌구조를 타파하는 경제패러다임의 변화수단’으로 활용하려했던 정책 추진주체들의 과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결과론이지만 정부의 지원정책이 벤처토양의 자양분역할에 그쳐서도 지금과 같은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그래서 뼈아프게 들린다.
정책이 욕을 먹는 이유가 반드시 추진주체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책대상자(수혜자)의 책임도 적지 않다. 정책을 비난하는 이들은 주로 정책의 추진방식을 문제 삼는다. 좀 더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자금의 지원규모나 배분방식이 초점이다. 이로 인한 불만은 종종 자신은 정책의 수혜자가 아닌 소외자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 같다. 막상 자신과 관련된 정책이 추진될 경우 정책의 근본정신인 공익성보다는 자신의 혜택 유무가 호불호의 잣대가 되는 경우다.
요즘 부처별로 야심차게 추진중인 중소기업 IT지원사업은 바로 앞서 지적한 두 가지 경우가 모두 적용되는 사례다. 지금 업계에선 ‘3만개 중기 IT지원사업’과 ‘소기업네트워크사업’을 놓고 △ERP나 ASP사업의 경우 구축 후 사후관리가 더 중요한 데 이에 대한 대안 없이 그저 대상업체 수만 늘리는데 급급하다 △정작 지원받아야 할 곳은 인프라가 전무한 영세기업인데 ADSL이 깔린 곳만 지원이 가능하다는 지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귀기울일 만한 대목이 없지는 않지만 이로 인해 모처럼 부는 중기IT바람이 훼손을 입는 것 같아 안타깝다. ‘3만개 중기 IT지원사업’과 ‘소기업네트워크사업은 그동안 우리나라 정보화의 사각지대로 인식돼온 중소제조업과 영세서비스업종의 IT화를 앞당기는 획기적인 사업이다. 국가경쟁력을 제고시키는 풀뿌리 정보화의 진수인 것이다.
이같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불만의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는 이유는 우선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의 눈높이에서 찾아야 될 것 같다. 현재의 중기IT사업정책은 마치 자식을 만점에 도달할 때까지 과외공부를 시키는 부모를 연상케 한다. 애정의 과잉이다. 하지만 평소 80점 맞은 학생과 30점 맞은 모든 학생이 과외를 시킨다고 똑같이 100점을 받을 수는 없다. 정부는 동일한 수업기회만 주면 된다. 나머지는 민간기업의 몫이다. 경쟁을 통해 걸러지고 차별화되는 게 시장경쟁의 순리다.
아직도 개발독재시절의 정책 100% 효용성을 믿는다면 이는 분명 착각이다. 이번 중기IT지원 정책 역시 인프라가 전무한 중소·영세기업이 정보화의 마인드를 가질 수 있도록 시드머니를 제공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나머지까지 욕심을 낸다면 그것은 분명 오버다. 해당기업 역시 정부의 중소기업 정보화 지원정책 의미를 지원금에서 찾지 말고 중소기업들이 직접 나서야 하는 주문으로 해석해야 함은 물론이다.
중기IT지원 정책의 성공여부는 추진주체들의 계획대로 정책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구현되느냐의 차원이 결코 아니다. 이보다는 해당기업이 이 사업을 얼마나 자기 문제로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책임지려고 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정부가 눈높이를 낮추면 해답이 보일 듯하다.
<김경묵 디지털경제부장 km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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