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 27일. 국립극장이 생긴 이래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행사가 열렸다.
1300여명의 문화 예술인이 한자리에 모여 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 특별상영 행사를 지켜봤던 것이다. 자리를 꽉 채운 관객들은 전문 극장과 달리 충분한 영사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나자 기분 좋은 웃음을 보여 제작스태프를 기쁘게 했다.
해가 바뀌어 2002년 1월 11일.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감독들로 중무장한 다른 영화들과 함께 마리이야기는 개봉됐다. 3년만의 일이었다.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제작진에게 3년이란 시간은 마치 30년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난 3년 동안 마리이야기를 만들었던 식구들은 4번의 결혼식과 2번의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2명의 임산부도 생겼다.
마리이야기는 지금도 광화문의 씨네큐브에서 자리를 지키며 찾아오는 관객들을 반갑게 맞고 있다. 이젠 남자친구의 손을 끌고 표를 끊는 연인뿐 아니라 서너명의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러 오는 풍경이 더 자주 보여지고 있다.
일주일에 고작 1∼2분 분량밖에는 만들 수 없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고생은 많았지만 웃을 일도 많았고 뿌듯한 마음에 남의 남자, 남의 여자를 포옹해야 하는 일들도 있었다.
‘마리이야기’는 이성강 감독의 단편 ‘하늘을 나는 원숭이’에서 시작됐다. 애초 ‘마리’는 흔히 생각 할 수 있는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에서 사용되는 흔한 여성의 이름이 아니라, ‘한마리 두마리’를 세는 우리말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이 원안을 가지고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2명의 작가가 중간에 나가 떨어졌고 제작자인 조성원 PD는 시나리오가 잘 풀리지 않자 감독에게 폭탄선언을 하게 된다. 작가와 둘이서 작업을 진행하며 어떻게 해서든 시나리오를 들고 나타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려던 PD의 마지막 다짐이었을 것이다.
그때가 더 이상 시간을 끌게 되면 제작이 무산될지도 모를 그런 위기상황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PD의 돌발행동 덕분에 일단 시나리오를 제외한 나머지 작업들은 중지되었고 초기 구성된 애니메이터들도 2주일간의 달콤한 휴가를 얻을 수 있었다. 다행히 두달 후 ‘찾지 말아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던 PD가 잘 짜여진 시나리오를 들고 나타나면서 제작은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모든 스태프들이 함께 스토리를 공유하고 방향을 정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최종 시나리오가 나온 후에도 시나리오 윤색작업은 계속됐다. 그림이 모두 그려지고 난 후, 그 그림에 맞는 대사들로 수정작업을 해야 했고, 그림에서 보여지는 주인공 주변 인물들의 대사를 설정하고 만들어주는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는 각 신들을 보다 생동감있는 리얼리티로 살리고자 한 것이었는데, 실사영화 같으면 촬영할 때 엑스트라들의 목소리를 통해 자연스러우면서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주변인물의 대사 하나하나도 만들어 내야 했다.
시나리오가 나온 뒤, 배경팀은 배경의 모델로 잡아놓은 감포로 배경여행을 떠나고 원동화팀은 캐릭터를 수정했다. 기존에 만들어 놓았던 캐릭터들을 수정하고, 모자란 캐릭터들은 주변인물들을 모델로 다시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또 스토리 진행상 못쓰게 된 주연급 중 몇몇은 주변 마을사람 혹은 회사동료 등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처음엔 엑스트라에서 갑자기 주연급으로 부상한 캐릭터도 있었다. 제작자의 모습을 딴 경민(남우의 엄마를 좋아하는 동네 아저씨. 목소리 연기는 안성기 씨가 맡았다)이 바로 마지막 단계에서 갑자기 메인 캐릭터로 등극하는 영광을 얻었다.
<씨즈엔터테인먼트 이동인 PD jabbit@s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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