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유럽-유럽 초고속인터넷 시장, 거대 통신업체 역할 놓고 논란

케이블TV업체들이 개척해온 유럽의 초고속인터넷 시장이 소수의 거대 통신업체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유럽 국가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이들 거대 통신업체들의 시장지배력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인터넷 시장조사기업인 데이터모니터는 오는 2006년까지 유럽의 초고속인터넷 사용인구가 350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며, 이 가운데 63%가 통신업체들이 제공하는 ADSL 회선을 이용하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월스트리트 저널 유럽은 현재 유럽의 초고속인터넷 사용인구의 53%를 통신업체가 장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네덜란드의 유나이티드팬유럽커뮤니케이션스나 영국의 텔레웨스트 같은 케이블TV업체가 유럽의 초고속인터넷 시장을 좌우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통신업체들의 약진으로 유럽의 초고속인터넷 시장은 이미 몇몇 거대 통신업체의 통제권으로 들어간 느낌이다. ADSL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부분의 업체가 BT나 프랑스텔레콤·도이치텔레콤과 같은 거대 통신업체의 자회사이거나 아니면 이들의 전화회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중소업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는 거대 통신업체들의 시장 참여로 유럽에 본격적인 초고속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이들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국가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이들의 시장 횡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이 통신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악용, 인터넷 시장의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우려의 목소리는 인터넷에 관한 신기술 도입이 느리기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특히 뚜렷하다.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초고속인터넷을 개척한 당사자는 누스(Noos)와 같은 케이블업체였다. 그러나 현재 프랑스의 초고속인터넷 붐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은 다름아닌 프랑스 제1의 통신업체인 프랑스텔레콤이다. 지난해 프랑스텔레콤의 자회사 와나두가 인터넷 사용료를 30%나 인하하면서 1년 사이에 초고속인터넷 사용인구가 무려 5배나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와나두의 가격정책은 경쟁업체로부터 불만을 사고 있다. 와나두가 경쟁업체들을 시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인위적으로 저가격정책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T-온라인 프랑스/클럽 인터넷의 대표 마리 크리스틴 레벳은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와나두가 프랑스 초고속인터넷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미 프랑스 ADSL 회선의 90% 이상을 와나두가 장악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녀는 프랑스텔레콤이 와나두의 경쟁업체들에 과도한 전화회선 사용료를 부과함으로써 자회사를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처럼 경쟁업체들의 비난이 거세지자 급기야 지난 12월 EC가 논쟁에 개입, 프랑스 인터넷 시장의 경쟁상태를 조사하기에 이르렀다. 와나두가 경쟁을 저해할 목적으로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낮은 가격을 유지했는가가 조사의 주된 쟁점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거대 통신업체들에 대한 불만은 영국과 독일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영국의 통신규제당국(Oftel)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두 차례에 걸쳐 BT가 외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제공업체에 부과하는 회선사용료가 과다하다며 이의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또한 독일의 인터넷 감시단체들은 도이치텔레콤이 초고속인터넷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외부 회선이용업체에 과다 사용료를 징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회사인 T-모바일을 동원해 접속료 덤핑에 나서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유럽 각국의 전화회선이 몇몇 거대 통신업체에 장악돼 있는 한 초고속인터넷 시장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EC가 유럽 각국간 유선전화 시장 경쟁 확대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음미할 만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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