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 저/세종연구원 펴냄
미래란 미지의 세계다. 즉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은 마음 한 구석에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다. 현대사회는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그저 상상만 했던 것을 눈앞의 현실로 만들어 내는 문명의 혜택을 영위하고 있다. 불편함을 미처 느낄 사이도 없이 한단계 더 편리해진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 속에서 현대인은 과거 왕도 누리지 못했던 온갖 시설을 매일같이 사용하게 됐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고 세상이 빠르게 변화할수록 점점 더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어지고 그에 따른 불안감은 가중된다. 미래를 그리는 책과 영화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엔트로피’는 물리학적 관점에서 환경의 문제를 다루고 미래에 다가올 문제를 경고하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엔트로피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으며 최근 우리나라에 소개된 뒤 환경문제와 관련, 넓은 범위에 영향을 미쳤다. 대학마다 앞다퉈 논술고사의 주제로 엔트로피 문제를 다뤘던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엔트로피란 그리스 어원인 ‘en(알맹이)’과 ‘trepein(전환)’이 합쳐진 것이다. 물질이 열역학적 변화를 일으킬 때 변화된 온도로 열량을 나눈 값을 말한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의하면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 변화한다. 즉 유용한 상태에서 무용한 상태로, 질서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변화한다. 따라서 에너지 보존법칙에 의해 지구 또는 우주의 에너지는 일정한데 이미 무용한 상태로 돼버린 무질서 상태의 엔트로피는 계속해서 증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무를 태우면 열과 빛을 내지만 이미 타버린 나무는 반대의 방향으로 되돌릴 수 없이 무용한 상태로 된다는 이론이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할수록, 그 과정이 복잡할수록 엔트로피의 총량이 많아진다. 그러므로 산업혁명 이후 기계화가 가속화되면서 더 많은 양의 전기와 자원이 사용돼 왔으며 따라서 엔트로피의 양도 급속도로 늘어나 현재는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 저자의 경종이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열역학적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 외에 문제의 안에 내재된 세계관과 역사관에서 문제의 핵심을 찾는 점이다. 실제로 작가의 주장과 같이 현재 사회는 기계적 세계관이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과 사회의 이익을 위해 연구와 개발을 수행하고 그런 과정에서 세계가 발전하고 인간의 생활이 편리해진다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편리함을 영위하는 중에도 사회는 날로 피폐해지고 생활에 대한 불만은 날로 커지고 있다. 저자는 인간의 역사가 진보할 것이란 믿음은 엔트로피의 문제를 눈가림한 망상일 뿐이라고 경고한다. 오히려 역사는 퇴보하고 있으며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 그리고 기계화를 거치면서 점점 인간의 삶은 고달파지고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에너지는 점점 더 커져왔다는 것이다. 현대인이 누리는 작은 질서를 창출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더 많은 양의 무질서가 만들어지고 지구의 에너지원은 고갈 상태에 다다르게 돼 인류는 파멸에 직면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문제의 해결책으로 속도를 늦추는 방법, 다시 말해 저엔트로피 사회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 외의 방법은 부가적으로 더 큰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므로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 방법은 현대사회의 근간을 뒤엎는 내용이다. 설사 그의 모든 주장이 사실이고 모든 이가 그의 주장에 공감한다고 해도 자발적으로 저엔트로피의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을지에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역사를 통해 인류는 저에너지에서 고에너지로, 전체에서 개인주의로 옮겨왔다. 현대의 기술발달도 개인의 필요와 욕구에 부응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이 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라는 것이 저자의 제시인데 그것은 인간의 문명발전에 대한 욕구를 저자의 엔트로피 법칙에 대한 자의적 또는 편협적 해석에 기반을 두고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연세대 강문기 교수 mka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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