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갈 길 잃은 여성프로게이머들

 “스스로 당당해지기 위해 그리고 명예를 얻기 위해 고심 끝에 이 직업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최고의 선수를 꿈꾸며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이 모든 꿈을 접었습니다. 뛸 마당(대회)이 없는데 프로게이머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한국 여성 e스포츠계의 유망주인 박윤정(전 KTB퓨처스)은 최근 중대한 결심을 했다. 그 누구보다 프로게이머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여성 e스포츠에 대한 입지가 약화되면서 활동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박 선수 말고도 많은 여성 프로게이머들이 비슷한 결심을 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여성 프로게이머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줄었다. 2000년 최고 100여명의 여성 프로게이머들이 활동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감소한 것이다.

 여성 프로게이머들이 e스포츠 활동을 접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참가할 대회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 2000년만 해도 ‘한국인터넷게임리그(KIGL) 여성부대회’를 축으로 많은 대회가 열렸다. 선수들은 어떤 대회를 참가해야 할지 고민할 정도였다. 여성 프로게이머가 급증하고 여성 e스포츠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전년도에 비해 비교도 안될 정도로 대회가 줄었다. KIGL 여성부대회를 비롯해 예정됐던 각종 대회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연기됐다.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 최초의 e스포츠 올림픽인 ‘월드사이버게임즈(WCG)’에서 여성부 리그는 주종목이 아닌 이벤트로 조촐하게 열렸다. 급기야는 국내 e스포츠를 주도하는 메이저 e스포츠 주관사들이 더 이상 여성 대회를 개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99년과 2000년 동안 신생 프로게임단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하지만 이들 신생구단들은 급하게 팀을 결성하면서 상대적으로 선수층이 얇은 여성 선수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또 실력보다는 외모를 기준으로 선수를 선발함으로써 구단 스스로 화를 자초한 흔적도 없지 않다.

 여기에다 관객들의 ‘보는’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전략과 기술로 말미암아 여성 프로게이머의 경기는 팬들의 관심과 눈길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성 e스포츠계를 이대로 방치하고 보고만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e스포츠계는 여성 e스포츠가 몰락한다면 국내 e스포츠계뿐 아니라 한국 게임산업에도 적지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했다.

 한 여성 프로게이머는 “그동안 여성 e스포츠가 활기를 띠면서 여성 게이머들이 남성에 버금갈 정도로 많이 늘어났다”면서 “여성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 여성 게이머의 수 역시 자연스럽게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스프츠계는 이에따라 한국 프로게임협회 등 관련단체와 게임업계가 앞장서 여성 e스포츠의 불씨를 살려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스포츠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프로게임협회가 지난 반년동안 한 일이란 남성 프로게이머들을 대상으로 한 게임 대회 개최뿐이었다”고 지적하고 “협회는 여성 프로 게임 리그를 주도적으로 창설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한 관계자도 “여성 게이머들이 적극 참가할 수 있는 리그 창설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그 역할은 게임 방송사들이 일정부문 맡아 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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