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은 우리 영화산업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 중 한명이다. 영화 전문 제작사이자 최대 배급망을 갖고 있는 시네마서비스의 회장이며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등을 만든 한국의 대표적 흥행영화감독인 그가 제작과 투자, 배급 전선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다 4년만에 자신의 영화를 내놨다.
‘공공의 적’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투캅스’가 그러하듯, 경찰영화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투캅스’와는 무게가 다르다.
‘공공의 적’은 무식하고 거친 강력계 형사 강철중(설경구)과 엘리트 펀드매니저인 잔인한 살인범 조규환(이성재)의 대결이 중심을 이룬다.
이 대결은 선악의 구도가 아니라 악과 악,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구도다. 이 구도에서는 썩어빠진 사회에 대한 나름의 저항을 드러내는 쪽이 승자가 된다.
영화는 격무에 찌들고 생명의 위협에 노출돼 있으며 ‘상처와 흉터를 훈장처럼’ 달고 살지만, 박봉에 시달리는 강 형사를 결코 선한 편에 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강 형사가 마약을 빼돌리고 노점상으로부터 약간의 상납을 받는 것은 이 사회에 돈과 권력을 향유하면서 나쁜 짓을 하는 놈에 비하면 봐줄 만하지 않으냐는 것을 은연 중에 드러낸다.
돈 잘벌고 단란한 가정에 댄디한 외모, 별로 부러울 것 없을 것 같은 조규환이 탐욕 때문에 자신의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패륜을 저지른다. 또 강 형사와의 대결에서 잔인한 쾌감을 맛보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재물로 삼는 사악함에 견줘볼 때 상대적으로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는 강 형사에 의한 응징이 정당성을 획득하도록 영화는 흘러간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응징은 통쾌하지 않다.
강 형사는 공적·제도적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방식으로 그를 처벌한다.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심판(죽음)을 내리는 것이다. 경찰이나 형사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법체계의 모순이나 허점,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지능적이고 교활하며 사악한 범죄자에 대해 사적처벌을 내리는 것은 드물지 않다.
이미 클린트이스트우드의 마초형사 캘러헌이 등장하는 ‘더티 해리’시리즈나 ‘매그넘 포스’, 얼마전 상영됐던 ‘이것이 법이다’같은 영화에서 익숙하게 보던 풍경이다. 그러나 이런 영화에서 주인공은 허점투성이 법이라도 가급적 법의 테두리안에 남겨진다. 반면에 ‘공공의 적’에서 강 형사는 마음먹고 악질적인 살인마를 응징한다. 공권력은 무기력할 뿐만 아니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로서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 것일 터이다.
‘공공의 적’은 어두운 범죄와 악의 세계를 얼핏 들추어낼 뿐, 그것에 매달리지 않는다. 이 영화는 강우석 특유의 유머와 폭소를 곳곳에 배치해 놓으면서 잔혹한 폭력과 범죄가 드리우는 그늘을 지워나간다. 특히 단순무식하고 거친 형사를 연기한 설경구의 능청스러움과 질펀한 욕설, 그리고 주변의 해학적 인물의 배치는 이 영화가 무거워지는 것을 경계하는 데 기여한다. 힘있는 연출과 빠른 템포감, 질감있고 개성적인 인물 묘사는 ‘투캅스’의 경쾌하지만 얄팍한 웃음과는 다른 무게로 관객을 사로잡을 만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큰 허점은 엘리트 살인마 조규환의 캐릭터가 견고하게 구축되지 못한 점이다. 이것은 이성재의 연기 문제가 아니라 시나리오나 연출상의 문제로 보인다. 조규환 캐릭터는 돌출적이거나 모호해 영화의 개연성에 상당부분 손상을 줬다.
거액의 돈이 걸려 있는 문제라 하지만 조규환이 어떻게 그토록 잔인하게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부모를 죽일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나, 샤워 중 자위를 하는 모습의 격렬함이 그의 성격의 일면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겉돌아 뜬금없이 느껴지는 것도 모두 그의 캐릭터가 선명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영화평론가·수원대 교수 chohye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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