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벤처 생태계를 바꾸자>(3)시장원리에 맞는 개선책 필요

 최근 벤처비리들이 속속 터져나오면서 정부의 벤처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몇년동안 지속적으로 추진돼온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책은 음지의 벤처기업들을 양지로 이끌어내며 화려한 ‘벤처코리아’ 시대를 열었지만 이에 못지않게 부작용도 많았기 때문이다.

 한 벤처기업 사장은 “죽어야 할 벤처기업들이 정부 지원으로 살아남으면서 벤처시장이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 향상은 크게 뒤처지고 있다”며 “이제부터는 시장의 원리를 적용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벤처는 과감히 퇴출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고도 정부의 보호 및 지원책에 기대어 연명하는 ‘강시 벤처’들 때문에 산 벤처들마저 공멸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경우 IT산업 중흥의 태동기인 지난 92∼93년 사이에 중소벤처기업 신규개업률(16.7%)과 폐업률(14.85)이 엇비슷하게 나타났다. IT 경기가 본격적인 침체국면에 접어든 지난해에는 부도처리되는 벤처기업들이 속출하면서 실리콘밸리의 건물임대료가 크게 떨어지기도 했다.

 나스닥의 경우 지난해 전체 상장기업수의 16% 정도가 퇴출됐다. 김영준 벤처캐피털협회장은 “미국의 경우 연간 4000여개의 벤처기업이 문을 열고 4000여개의 기업이 문을 닫는다”며 “한국 벤처시장도 입출입이 활발하게 만들어야 선진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코스닥시장에 일단 등록하면 퇴출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 99년말 331개였던 코스닥 등록법인수가 2년만에 700개를 넘어섰다. 이 가운데 지난해만 171개의 법인이 신규등록됐고 퇴출 기업은 단 9개에 불과했다. 항상 코스닥시장이 수급불균형에 시달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영준 회장은 “미국 경제가 80년 중반 이후 고성장을 기록했던 원인은 일본의 추격으로 경쟁력을 상실한 분야를 과감히 정리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마이크로프로세서 등 새로운 첨단 분야로의 진출이 이뤄졌기 때문”이라면 “한계 상황에 이른 기업들은 과감히 정리하고 경쟁력이 있는 기업들은 집중 육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 벤처의 퇴출과 함께 거론되는 해결방안 중 하나가 인수합병(M&A)의 활성화다. 미국의 경우 M&A를 통해 나스닥 상장기업은 물론 ‘프리 IPO’ 단계의 한계기업을 효율적으로 정리했다. 이같은 M&A의 활성화는 소멸된 기업의 기술과 노하우가 사장되지 않고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역할도 했다.

 전문가들은 명확한 등록 기준의 마련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즉 등록과정의 먹이사슬을 단순화하여 중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하라는 지적이다. 성남에 위치한 D사의 H사장은 “정부산하 기관(중소기업진흥공단, 기술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두번씩이나 벤처인증을 거절받은 우리가 국내 대기업과 대규모 공급 계약을 추진중이고 일본 기업으로부터는 투자는 물론 해외 마케팅 제안까지 받았다”며 “이제는 정부로부터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장에서 평가받겠다는 생각이다.

 고정석 일신창투 사장은 “벤처기업의 옥석을 가릴 수 있는 벤처지원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벤처투자자금은 투기성 자금의 성격으로 변질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금 벤처업계의 구조로선 투자의 우선순위가 기술력이나 마케팅보다는 투자회수 시점에 포커스가 맞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정부는 최근들어 더이상 ‘퍼주기식’ 벤처정책은 그만두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벤처에 대한 감독과 심사를 강화하고 불·탈법을 저지를 경우 즉각 벤처 자격을 박탈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라 한다. 벤처를 한국경제의 희망으로 치켜세우며 각종 육성책을 짜내던 정부가 태도를 180도 바꿔버린 점이 아쉽긴 하지만 뒤늦게나마 흐트러진 벤처질서를 바로잡겠다고 나선 점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정부가 지나치게 여론이나 국민정서에 밀려 벤처기업에 대한 단속에만 치중한다면 십중팔구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가뜩이나 IT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벤처기업들에 채찍만 가하다간 자칫 건전한 벤처기업은 물론 국내 벤처업계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들의 경우 최근 과감한 감원과 인원정리, 한계사업정리 등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한 인터넷업체는 공기업과 지분교환을 통한 전략적 제휴를 통해 수익모델을 확보하려는 방법을 강구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해외시장 진출의 성공으로 본사를 국내에서 해외로 옮기는 벤처들도 있다. 벤처전문가들은 “정부는 이제 벤처기업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간접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오히려 벤처기업들에는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