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을 국제 외교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시킨 것은 2000년 7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개최됐던 ‘G8 정상회의’에서였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서방 7개 선진국 정상들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참석했던 오키나와 정상회의는 세계 경제회복 등의 주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계속하다 마지막날 ‘IT헌장’을 채택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에 고무돼 ‘하나의 유럽’을 건설하는 것이 목표인 유럽연합(EU)과 아시아 지역에서 최고의 결속력을 자랑하는 ‘아세안+3’ 등의 정상회의에서도 최근 골치 아픈 경제현안을 제쳐놓고 IT분야 협력을 확대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5000년 역사를 가진 우리는 아직 한번도 세계사의 중앙 무대에 서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서도 우리가 역사의 외각을 맴돌아야 할 것인가. 물론 아니다. 최근의 국제환경 변화는 우리도 역사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변화의 중심은 바로 ‘IT외교’다.
IT외교라고 해서 외교활동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외교활동은 정치와 경제·통상·환경 등의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가간의 이해를 막후에서 조정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러나 앞으로 펼쳐질 ‘IT외교’란 표현대로 ‘IT’관련 분야로 토론주제가 바뀌고 있다. 산업 중심의 이동에 따른 단순한 변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외교의 무대가 일단 IT분야로 옮겨지면 우리나라의 입지가 크게 달라진다. 최근 몇년 동안 우리의 산업 구조가 IT중심으로 바뀌었고 관련 인프라 측면에서도 가장 앞서가는 나라 대열에 서 있기 때문이다. APEC회의와 아세안+3 회의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이 디지털 평등사회 구현을 주창하고 각국 수반들의 동참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입지 변화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IT분야에서 위상 변화는 우리에 대한 관심 변화에서 읽을 수 있다. 영국의 로이터통신과 BBC방송, 미국 뉴욕타임스 등 전세계 여론을 주무르는 언론사들이 지난해부터 우리나라 IT관련 산업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또 이같은 분위기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 IT관련 인사들의 수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들 가운데에는 세계적인 IT기업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각 국가의 IT 및 통상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장·차관급 고위 정부 관리가 다수 포함돼 있다.
이들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휴대폰을 갖고 있고 4명 가운데 1명이 이미 직장·가정에서 초고속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올해 벽두 우리나라 IT산업을 둘러보기 위해 방한했던 영국의 패트리샤 휴이트 통상산업부 장관의 경우 ‘우리나라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800만명에 달한다’는 설명을 못미더워하다가 한 PC방에서 직장인들은 물론 초·중학생, 심지어 동네 주부들까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게임과 채팅·주식투자 등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 ‘경이롭다(wonderful)’는 감탄사를 연발했을 정도다.
물론 이러한 성과는 우리나라 정부와 민간 기업들이 IMF체제 등으로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인터넷의 보급을 확대하고, 휴대폰으로 24시간 동안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선 인터넷과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등 차세대 핵심 IT기술 개발에 주력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IT분야에서 일군 성과를 더욱 발전시켜 세계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외교 무대에서 우리의 위상을 과시하는 작업도 요구된다. IT분야의 장기 발전계획을 담은 IT정책은 그래서 필요하며 특히 IT산업을 지원하는 외교의 활성화는 무엇보다 시급하다.
차기 IT대통령에게는 ‘IT’를 기반으로 한 ‘외교정책’의 성패가 단순한 경제외교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새로 쓰일 세계사의 중심에 우리나라를 서게할 수 있는 기회로 발전시킨다면 반만년 역사의 어둠을 걷어낼 ‘빛나는 유산’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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