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만 해도 희망에 차 있었던 벤처기업 종사자들은 요즘 다시 안정된 직장, 대기업을 얘기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경기침체에 따른 정보기술(IT)산업 위축은 우리의 희망이었던 벤처의 앞길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리고 어디서부터 얽힌 매듭을 풀어야 할까. IMF 탈출의 원동력이었던 벤처기업과 벤처기업가 정신이 동맥경화를 보이게 된 것은 무엇인가.
새해 벽두부터 각곳에서 나오는 ‘다시 벤처기업을 살려달라’는 목소리는 이러한 현실을 정확히 파악해 대안을 제시하고 엉킨 곳을 풀어야 한다는 강력한 주문인 셈이다.
차기 정부나 대통령의 벤처 육성정책 과제는 경쟁력 있는 벤처육성과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의 자극으로 요약된다.
실제로 중기청 관계자와 벤처전문가들은 “1만1000개에 달하는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이제 양적 팽창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할 때”라고 지적한다. 또 지난해 겪었던 일부 벤처기업들의 모럴 해저드에서 보듯 벤처정신의 복원 또한 지상과제라는 것이다.
어떤 정책으로 다시금 벤처기업들의 신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방안은 벤처의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정책적 지원, 그리고 기업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 마련 등이다.
우리나라는 벤처 선진국과는 달리 벤처사업가의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다. 물론 그 이면에는 실패한 경영인의 재기를 사실상 불허하는 보이지 않는 정책적 규제라는 환경이 자리잡고 있다.
“최선을 다하다가 실패한 기업가에 대해서 인정해주는 분위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을 다시 만들 때 신용거래불량자로 낙인찍히면 재기하더라도 정책자금·대출 수혜 등에서 불이익을 받습니다.”
와이비파트너스의 정승환 상무이사는 이같이 지적한다. 이 지적은 우리나라 벤처 정책에 있어 필요충분조건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실패를 용인합니다.” 미국의 시사잡지 뉴스위크의 데이비드 캐플런 기자는 벤처의 발상지라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말 가운데 하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기업인들은 사업에서 위험감수행위를 높이 사는 기업가 정신을 갖고 있다. 동시에 과거에 벌어졌던 일을 기억하려 들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분위기가 ‘해보자’는 기업가정신의 고양으로 이어지면서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려는 분위기도 자연스레 형성된다는 것이다.
김용환 한국기술벤처재단 사무총장은 “기존의 벤처육성정책이 97년 이래 양적 성장과 팽창을 거듭해 오면서 국가경제에 기여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이제는 그 많은 싹 가운데 ‘될 만한’기업을 골라 대형화·글로벌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1만1000개의 기업이 벤처기업확인을 받아 벤처기업으로 세제상의 특혜를 받아 ‘해보자’ 며 벤처정신을 불태우면서 함께 키워 온 부작용을 건설적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벤처산업을 압축성장시키면서 양적 팽창을 통해 벤처의 씨를 뿌려온 노력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제는 벤처기업의 질을 높여 국제화시대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함께 각종 규제 철폐를 통한 기업경쟁력 강화도 얘기된다.
이인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IT벤처정책연구센터 소장은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그에 따른 시장원리를 존중하는 벤처시장의 육성을 얘기한다.
그의 주장은 “벤처캐피털산업 참여시 금액에 대한 규제, 투자비율을 제한하는 법제는 물론 벤처캐피털리스트에 대한 투자성과금까지도 규제하는 틀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부의 벤처기업에 대한 세제 및 금융지원도 가능성 있는 기업 중심으로 이뤄져 더이상 ‘온실속의 벤처’가 만들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지적한다.
차기 대통령의 벤처정책에 대한 주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올해의 화두는 이처럼 벤처산업의 질적 성장과 제반 규제 해소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아이디어와 기술로 거센 역경을 헤쳐나가야 하는 벤처정신의 쇠퇴가 정부의 규제와 타율의 산물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때문에 벤처의 퇴출도 강제적 퇴출이 아니라 시장경제에 의한 자연적 퇴출이 이뤄질 수 있는 제반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벤처캐피털리스트가 투자해서 성공하면 그 벤처와 이익을 공유할 수 있고 실패하면 그 책임을 실패 그 자체로 물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벤처의 질적 성장을 위한 방법은 글로벌화와 인수합병(M&A)의 활성화다. 이는 벤처를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바꿔 산업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M&A 활성화 정책을 통해 기업구조조정과 함께 글로벌 경쟁시대의 벤처기업 경쟁력을 증폭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지난해 거세계 몰아쳤던 세계경기와 한국경기의 동반침체 속에 ‘경기회복’이란 지상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누가 대통령에 오르던 국가경제의 새로운 엔진으로 자리잡은 벤처산업계를 어떻게 다시 일으켰느냐가 그의 치적을 평가할 최대 잣대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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