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에게 듣는다>(4)삼보컴퓨터 이용태회장

 ‘e코리아 전도사.’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은 전경련 e코리아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한국 정보강국 실현’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그는 정부관계자와 업계 오피니언리더들을 만나 e코리아추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의 동참을 독려하고 있다. 이 회장에게는 e코리아가 한국을 살리는 ‘지고지선’으로 통한다. 그는 IT업계를 이끌어 온 파이어니어로 불려진다. IT 불모지나 다름없던 지난 70년대 중반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전산기 연구실장, 한국전자기술연구소(ETRI의 전신) 전산개발부 부소장을 역임하면서 국내 어떤 사람보다 앞서 PC기술을 도입하고 개발을 추진해 왔다. 그후 81년에는 삼보전자엔지니어링(삼보컴퓨터의 전신)을 설립해 국내 최초로 국산PC인 ‘SE 8001’을 개발했으며 이듬해에는 국내 최초로 캐나다에 국산 PC를 수출하면서 국내 PC산업의 태동과 PC산업 발전을 주도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PC업계의 산증인으로 부른다. 이뿐 아니다. 이용태 회장은 오랜 세월동안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 못지 않게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에 많은 제안과 대안제시를 아끼지 않았다. 실제 정부부터 행정전산망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을 펴 데이콤을 만들고 사장을 맡은 것도 잘 알려진 일화다. 지난해에는 정부에 200만 소프트웨어 인력 양병설을 제안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고희를 앞두고 있는 이용태 회장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약력 △33년생 △5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졸업 △59∼69년 서울대·동국대·서강대 강사, 이화여대 전임강사 △69년 미국 유타대학교 이학박사 △70∼77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연구원, 전산기 운영실장, 전산기 국산화 연구실장 △78∼81년 한국전자기술연구소 부소장 △80년 삼보컴퓨터 설립 △82∼89년 한국데이타통신(현재 데이콤) 사장, 회장 △94∼96년 아세아 대양주 전산산업기구(ASOCIO) 회장 △95∼96년 교육개혁위원회 위원 △현 한국정보산업연합회 명예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두루넷 회장, 삼보컴퓨터 회장, 미디어밸리 추진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국민경제자문위원 △저서 ‘컴퓨터산책’ ‘정보사회, 정보문화’ ‘컴퓨터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선진국, 마음먹기에 달렸다’

*대담= 금기현 IT산업부장

 

 ―새해들어 IT경기가 다소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긴 합니다만 지난해에는 우리나라 IT업체들이 수출 주력제품인 D램 가격의 하락과 PC의 수출 부진 등으로 상당히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구체적인 수치를 밝힐 수는 없지만 지난해는 IT산업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IT산업은 그동안 다른 산업이 어려웠을 때에도 항상 플러스 성장을 이룩해 왔다고 보면 지난해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알 수 있겠지요. 이렇게 된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만 제 생각으로는 PC 및 이동전화 보급률 포화와 과잉생산이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IT산업에서는 항상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무어의 법칙이 유효하다는 점에서 보면 지난 한해 숨고르기를 했으니 다시 성장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전처럼 고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새해에는 좋아 질 것이라는 말씀이죠.

 ▲일반적으로 불경기는 생산과잉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생산이 수요보다 많아 문제가 많았지만 하반기부터는 각 기업들이 재고조정에 들어가면서 이러한 문제가 많이 해소됐습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고 경기순환론적인 측면에 비춰 보면 올해는 경기가 다시 살아날 게 틀립없습니다. PC분야로 한정해서 한번 얘기 해볼까요. 지난해 PC시장의 경우 하드웨어 기술은 발전을 거듭하는데 킬러 애플리케이션은 눈에 띄지 않아 역성장을 기록했다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올해에는 소비자들의 PC교체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윈도XP가 개인의 PC구매를 유인해 어렵던 시장을 플러스 성장으로 바꿔 놓을 겁니다.



 ―IT경기가 되살아나기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펼쳐야 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나라 IT산업은 남산에서 서울을 내려보는 것과 흡사합니다. 남산에서 서울시내를 내려다 보면 고층건물도 많지만 다른 한켠에는 판잣집도 적지 않지요. 모든 것은 양면이 있게 마련이죠. IT산업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초고속인터넷, 인터넷 접속시간, 주식거래를 비롯한 전자상거래 분야에선 단연 세계 1위입니다. 다시말해 IT의 개인 소비측면에선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 올 수 없지요. 그러나 기업이나 정부에서 IT를 활용하는 것은 아직까지 개인사용자들을 따를 수 없습니다. 이렇게 봤을 때 현재로선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 B2B와 같은 IT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이를 유도하기 위한 정부의 과감한 조치가 우선돼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조치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한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오스트리아에선 연구개발(R&D)투자 비용의 150%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서 세금을 감면해줍니다. 기업이 PC를 구매할 때는 가격의 30∼50%를 정부가 부담해 주기도 합니다. 물론 현 정부가 IT경기 활성화를 위해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더 열심히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죠. 지난해 통계를 보면 정부가 정보화 예산으로 1조5000억원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같은 기간동안 건설교통부 예산이 100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작지요. 정부가 국가경쟁력을 키워야 겠다고 생각한다면 건교부 예산의 30% 정도를 IT예산으로 돌릴 수 있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를 돌이켜 보면 반도체 수출이 무너지면서 우리의 국가 경제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국내 IT산업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IT산업은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습니다. 특정분야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는 급격한 경제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지요. PC산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PC산업은 제조부문에서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값싼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에 이같은 하드웨어 제조 분야의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드웨어 부문의 산업 공동화현상은 불을 보듯 뻔하고 청년·고학력 실업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지요. 상황이 이럴진데 PC의 제조생산에만 매달려서 되겠습니까. 국가 장래와 IT산업의 발전을 위해선 지금과 같이 특정분야에 편중된 국내 IT산업의 구조를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산업으로 다양화해 경쟁력을 키워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식기반 산업이라면 소프트웨어·영화·게임 등을 들 수 있는데요.

 ▲물론입니다. 특히 저는 소프트웨어산업을 주목합니다. 지난해 전반적인 IT산업 불황에도 소프트웨어 산업은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인도의 최대 소프트웨어업체인 타타컨설팅사의 경우 세후 이익이 30%선에 이릅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부족한 소프트웨어 인력은 앞으로도 크게 부족한 상황입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대다수가 대학교를 졸업하는 교육열이 높은 국내에 적합한 사업입니다. 반도체와 같이 대규모 자본과 기술집약적인 산업이 아니란 점에서 우리가 소프트웨어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아끼자 않아야 할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육성은 우리 정부와 업계가 오래전부터 외쳐온 구호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아직까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업기반이나 인프라 측면에서 볼 때 소프트웨어 육성은 요원하지 않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부회장으로 있는 전경련은 소프트웨어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난해 정부에 ‘e코리아 프로젝트’를 제안했습니다. 다른 많은 내용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 부문입니다. 1년에 20만명에 이르는 소프트웨어 인력을 양성하자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지금 우리는 소프트웨어인력 양성하면 교육비를 지원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합니다. 전경련은 보다 유능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비용 지원보다는 정부가 국내에 1조원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를 만들고 이를 마이크로소프트나 오라클과 같은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업체에 맡기는 방안을 제시했죠. 눈길을 끌 만한 제안이죠. 물론 프로젝트를 외국 유명업체에 맡기되 이를 추진할 때 대부분의 인력을 국내인으로 하도록 한다는 전제조건을 제시해야지요. 이럴 경우 정부는 1조원을 투자해 어떤 일이든 해 낼 수 있는 경험있는 고급인력 20만명을 양성하게 되지요. 잘 생각해보세요. 이것이 제대로 되면 우리나라는 전세계의 중요한 소프트웨어 개발기지가 되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력은 어떤 프로젝트든 거뜬히 해낼 수 있는 양질의 소프트웨어인력이 된다는 점에서 해볼 만한 일이 아닙니까. 보기에 따라 투자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정부가 10조만 투자하면 200만명의 고급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화제를 바꿔 보겠습니다. 지난해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세계 경제에 편입됐습니다. 중국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최근까지도 아시아 IT분야에서는 일본, 한국, 대만이 경쟁해 왔습니다. 기술개발과 생산에서 서로 협조하면서 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WTO가입과 함께 아시아의 최대 수요 및 생산기지로 부상하면서 앞으로 이같은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기술적인 면에서 보면 중국은 원자탄을 개발할 정도로 기초 기술분야가 발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제조경쟁력도 이미 우리를 앞질렀습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과거에 일본과 한국이 협업체제를 통해 성장해 왔던 것처럼 이제 중국과는 이것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국내 기업들은 이점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우리가 중국시장을 제대로 공략하기 위해선 중국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상식으로 여기는 사고와 중국인들의 생각이 상당히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선양에 삼보컴퓨터와 중국기업이 합작으로 참여한 공장을 운영해 본 결과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선 중국에 진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끝으로 후배기업인들에게 들려줄 충언이 있으면 한말씀 해주시지요.

 ▲바둑을 처음 시작하면 20급부터 시작합니다. 만약 1단으로 승단하기 위해서는 책도 열심히 읽어야 하고 대국도 하면서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요즘 후배 CEO들은 무척 똑똑하지만 너무 경영을 쉽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CEO라면 금융, 기획, 마케팅에 대한 전문지식을 모두 갖춰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부분이 부족하다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야합니다. 그래야 성공합니다. 한가지 더 충고한다면 벤처인들이 너무 빨리 크려고 조급해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정리=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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