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리사 남희섭(heeseob_n@yahoo.co.kr)
인터넷을 살아가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새로운 질서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정해지고 있다. 디지털 환경의 모든 형태가 독점되는 것이다. 지금 국회 과기정통위에서 심의되고 있는 ‘온라인 디지털 콘텐츠산업 발전법안’이 바로 그것이다. 이 법안은 인터넷에 존재하는 모든 콘텐츠에 대해 그것을 디지털로 만든 자에게 독점권을 주어 허락없이 디지털 콘텐츠를 복제하거나 전송하지 못하게 한다. 저작권 제도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저작권법이 있는데 이 법안 제정은 왜 추진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이 다를까. 우선 이 법안은 저작권법과 달리 창작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정보를 디지털로 가공하기만 하면 독점권을 가질 수 있다. 법안은 지식과 정보의 생산 방식을 영리적 목적의 상품 생산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출발했다는 점도 그렇지만 콘텐츠 제작자를 보호하는 방식도 문제다. 법안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식은 콘텐츠 제작자에게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 소유권을 주는 것인데 이것은 법안의 애초 목적과 달리 콘텐츠 산업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 온라인의 기본적인 특성은 다양한 접속자들 사이의 폭넓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수정되고 쇄신되는 역동적이고 상호관계적인 문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은 콘텐츠의 최초 제작자의 영업상의 이익만을 고려해 이러한 온라인의 기본적인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 법안에서 또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배제할 권리로서의 소유권 개념에만 집착한 나머지 공유적 의미의 재산권 개념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유 개념의 가장 큰 특징은 타인을 배제하는 권리이긴 하지만 이것을 너무 맹신하면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도 엄연히 소유 개념의 하나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창작자에 대한 보상으로 저작물에 대한 독점권을 인정하는 저작권법도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법의 목적 가운데 하나로 상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창작’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투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배타적 소유권을 창설하는 것은 헌법의 질서에 위배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디지털 환경은 자유로운 정보의 접근과 공유를 약속함과 동시에 기존 법률에 의한 보호의 위협을 함께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환경에서 법 제도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보에 대한 사적인 권리와 공익간의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법은 도덕이나 기술보다 더 강력하게 행위를 규제한다. 특히, 법안은 사이버스페이스의 모든 정보에 대한 복제와 전송 행위를 규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작권 제도 이상으로 우리 사회의 정보·지식의 생산체제를 결정할 것이다. 콘텐츠의 생산은 다양한 의제와 전략에 따라 이뤄지고 그 투자에 대한 결과의 기대 또한 동일하지 않다. 콘텐츠를 직접 판매하는 방식도 존재하지만 간접적인 이익을 기대하고 콘텐츠를 무료로 배포하거나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콘텐츠를 공유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영리적 상품 생산이라는 한가지 모델의 생산방식을 강제하는 이 법안은 정보와 지식·예술 등 한 사회의 문화 자산이 결코 한 가지 생산방식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없으며 오히려 다양한 생산과 소비 방식에 의해서 발전해 왔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문화 자산을 풍부히 발전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생산방식을 보장하고 모든 국민이 정보기술의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온라인 디지털 콘텐츠산업 발전법 제정은 재고되어야 한다. 끝으로 상호 의존성이 높은 복잡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소유의 형태는 ‘사회 전체의 누적된 생산 자원을 이용하거나 여기서 혜택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을 개인의 권리’라는 크로퍼드 맥퍼슨 교수의 말을 빌리면서 인터넷 시대에 맞는 법 제도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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