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이 살아남는다.’ 당장 반도체업계에 일어난 격변이 조만간 안정화하면 살아남은 일부 상위 업체가 시장을 독식하는 독과점체제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기술과 가격, 인수·합병으로 ‘후발업체 죽이기’를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성이 차지 않는 선두업체들은 아예 시장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꿔놓으려 할 것이다.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기술의 표준화를 주도하면서 어줍잖은 후발업체들은 아예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한다. 또 일단 만들어진 표준을 쉼없이 바꿔 철저히 진입장벽을 높여 강자에게 더욱 힘이 집중되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1, 2위 업체가 전체 시장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독과점체제가 구축되면 시스템업체와의 관계를 포함해 전체 IT업계의 역학구도는 지금과 사뭇 달라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시스템업체와의 힘의 균형=이윤우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미국 대형 IT업체 CEO의 신년하례회에 사상 처음 참석했다. 인텔 배럿 회장을 빼면 이 모임에서 이 사장은 유일한 반도체업체 사장이다. 삼성전자가 메모리시장을 넘어 IT시장의 주도세력에 포함된 것이다.
지금까지 시스템업체와 반도체업체의 관계는 인텔을 제외하곤 모두 주종관계였다. 메모리시장 1위라는 삼성전자도 그동안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반도체업체의 절대 수가 적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주종관계가 수평적인 동반자 관계로 바뀌고 있다. 상황에 따라선 지위가 역전될 수도 있다. 한때 인텔이 그랬다.
지각변동이 마무리되면 분야별로 극히 일부의 상위 업체로 시장은 재편된다. 이들이 갖게 될 영향력은 지금 세계 IT시장을 주무르는 대형 PC업체들에 못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가격은 물론 기술도 결정=재편 이후 상위 반도체업체들은 당장 시스템업체가 행사하는 가격결정권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망은 지난 90년대말 D램업계가 삼성전자, 마이크론, 하이닉스반도체, NEC-히타치 등 5개 업체로 재편될 때도 있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지난해말부터 닥쳐온 불황 때문이기도 했으나 20개에 육박할 정도로 많은 D램업체수로 인해 불가능했다. 만일 업체수가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들 경우 D램업체는 공급 조절능력을 갖고 가격결정권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격뿐만 아니다. 시스템의 기술방향도 반도체업체가 결정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의 급진전에 따라 시스템온칩(SoC)이나 임베디드 칩과 같이 다양한 기능을 집적화한 반도체가 각광을 받고 있다.
시스템업체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품에 구현하려면 반도체업체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해진다.
나아가 반도체업체가 시스템업체의 영역까지 침범할 수 있다. 시스템업체는 사실상 브랜드만 남게 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소니나 IBM과 같은 거대 시스템업체가 최근 반도체사업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도 이러한 예정된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됐다.
◇관건은 기술표준과 파트너십=그렇다고 반도체업체 모두 이처럼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차세대 기술과 시장표준을 장악하고 시스템업체와의 파트너십이 공고한 반도체업체만이 이에 걸맞은 지위를 누릴 수 있다.
베타(BETA)방식을 주창한 소니가 마쓰시타의 VHS에 밀려 VCR시장을 내주면서 일깨워준 시장표준의 중요성은 반도체분야에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미 그런 사례도 있다.
모토로라 80계열 프로세서도 IBM·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은 인텔의 8088에 밀려 PC시장을 내줬다. 이제 모토로라는 임베디드 시장에서 설욕을 다짐하고 있다.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가 D램사업을 마이크론에 넘겼으나 디지털신호처리기(DSP)라는 신개념의 제품 표준을 장악,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인텔 CPU의 ‘인텔 인사이드’나 삼성전자 TFT LCD의 ‘와이즈뷰’와 같은 브랜드 전략도 이미 기술과 시장에서 확보한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시스템업체와의 파트너십도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시스템업체들은 앞으로 막강해질 반도체업체와 미리 손을 잡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업체들도 시장내 영향력 확대를 위해 거대 시스템업체와 제휴가 절실하다. 상위 반도체업체와 시스템업체간 협력이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론이 하이닉스와 제휴하는 것도 단순한 시장점유율 상승을 넘어 이같은 시스템업체와의 협력 무드에서 배제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됐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IT시장 경쟁이 시스템이나 반도체 각각의 동종 업체간 경쟁보다는 특정 시스템-반도체 연합군끼리의 세력싸움으로 번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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