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닷컴 새출발

 【본지특약=iBiztoday.com】 유명세를 날린 닷컴기업들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보복전쟁 여파로 사실상 폐업상태에 놓였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post.com)의 기자 마크 라이보비치가 지난 99년 워싱턴 시내 한 닷컴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인터뷰를 할 때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당시 이 CEO는 실리콘밸리 닷컴업계의 기업문화인 ‘톡톡튀는’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해 테이블 축구 기구를 회사 로비로 끌고 나오는 이색적인 상황을 연출했었다.

 당시 신경제 지지자와 언론들은 닷컴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고 역설했다. ‘와이어드(wired.com)’와 ‘뉴욕매거진(newyorkmag.com)’ 등 IT잡지들은 90년대를 ‘닷컴시대’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들 잡지는 지난 99년 커버스토리에서 지금은 실패한 닷컴 CEO 마이클 올프 평론가의 ‘새로운 세상의 도래’ 선언을 크게 싣는 대담성을 보였다. 올프는 “닷컴 심장부에는 경제학 법칙에서 자유로운, 환상적인 세계가 놓여 있다”며 “닷컴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잔치는 끝났다. 닷컴이 온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환상은 지난 해부터 주춤해지기 시작해 지난 9월 미 테러 직후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에 따라 닷컴기업의 천재적 CEO들도 ‘혁명과 투쟁’이라는 닷컴업계 표어가 무색해지면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컴퓨터학과 대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인 기업공개(IPO)를 통한 벼락부자의 꿈도 막을 내렸다. 이제 닷컴업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아마존닷컴(amazon.com) 주가의 400달러 상승론을 펴며 닷컴 붐을 이끈 메릴린치(ml.com)의 애널리스트 헨리 블로젯마저 회사를 떠났다.

 이런 닷컴붕괴 상황에서 닷컴의 실패담을 다룬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기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뉴욕 실리콘앨리의 닷컴 흥망사를 연대순으로 다룬 세바스찬 녹스의 ‘스타트업 닷컴’과 더글로브닷컴(theglobe.com)의 스테판 페이터놋 사장이 쓴 ‘한 닷컴 사업가의 성공과 실패담’, J 데이비디 쿠오의 ‘인터넷 골리앗의 성공과 실패’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1억8500만달러의 투자자금을 날리며 6개월 만에 망한 고급패션 사이트 부닷컴(boo.com)의 실패를 다룬 ‘부 후’도 출판될 예정이다.

 그러나 실패담을 다룬 책들은 아마존닷컴의 베스트셀러에 오르지 못할 정도로 독자들의 반응이 냉담하다. 이는 실패한 닷컴 CEO들 모두가 회사를 부도낸 결격사유가 있는 인물들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엘렌 드제네레스의 새 시트콤 ‘엘렌 쇼’의 경우도 자신이 운영하던 닷컴이 망한 뒤 고향으로 귀향하는 CEO를 그리고 있지만 인기순위는 93위에 머물 정도.

 조지 워싱턴대학(gwu.edu) 사회학과 아미타이 에치오니 교수는 “미국 사회가 닷컴 붕괴와 테러여파로 신경제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전통적 가치로 기울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는 엄청난 변화”라고 풀이했다.

 ‘사이버 이기주의’의 저자 파울리나 보르숙은 “사람들은 이제 희생과 동료의식 등 인간적 유대감을 갈망하고 있다”며 “이는 단순히 6개월마다 직업을 바꾸거나 스톡옵션을 받는 것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보르숙은 “미국은 이제 닷컴을 부정하는 분위기”라며 “아무도 닷컴열풍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메릴랜드대학(umd.edu) 부설 인문학연구센터의 토마스 필드 교수는 “지난 90년대 대학생들이 넷스케이프의 마크 안드리센 등 닷컴업계 대표적 CEO들을 꿈꿨던 열기는 사라졌다”며 “젊은이들은 이제 단순히 돈만 버는 것이 아니라 60년대 세대들처럼 자기 완성적인 일자리를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닷컴열풍 때 학교를 중퇴하고 닷컴기업에 뛰어든 학생들이 이제 중국과 네팔·인도·이집트 등 해외에서 공부하는 것을 택하고 있다고 필드 교수는 덧붙였다.

 이를 두고 “닷컴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려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다우지수가 아직 3만6000포인트까지 오르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손실을 본 상황이어서 이같은 닷컴 부정 분위기가 가라앉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작가인 토머스 프랭크는 최근 출시한 ‘극단적 자본주의와 시장 포퓰리즘, 경제민주주의의 종말’이라는 책을 통해 신경제의 허구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신경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닷컴의 유효한 측면을 강조하는 시각도 만만찮다.

 미래연구소(iftf.org)의 애널리스트 폴 사포는 “사람들은 여전히 인터넷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며 “이는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와이어드의 편집장 케빈 켈리도 “닷컴이 한꺼번에 붕괴되기는 했지만 다시 일어설 것”이라며 “실패를 겪은 풋내기 CEO들은 닷컴 실패를 통해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 만큼 이전보다 훨씬 노련해졌다”며 닷컴 낙관론을 펼쳤다.

 최근 폐간한 IT주간지 실리콘앨리 리포터(siliconalleyreporter.com)의 발행인 제이슨 매케이브 캘러카니스는 “닷컴기업들은 이제 훨씬 노련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며 “국민 개개인과 미국 경제의 미래는 앞으로 5년 안에 지금보다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레디컬 E’를 공동집필한 글렌 리프킨과 조엘 쿠르츠먼은 “지난 5년간의 닷컴 붐과 뒤이은 붕괴 이후 인터넷과 전자상거래는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며 최근 주목받고 있는 에너지업체 엔론(enron.com)을 그 예로 들었다.

 회사 주가가 90% 이상 떨어진 엔론은 에너지 거래에 전자상거래 방식을 도입해 주목을 끌고 있다.

 <제이슨임기자 jason@ibiz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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