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라.’
대형 벤처캐피털들은 물론 이들과의 양적·물적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전문 벤처캐피털을 표방, 전문펀드 결성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벤처 활황기였던 지난해까지만 해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백화점식 투자를 했던 것과는 크게 대조되는 현상이다.
이같은 전문 투자에 불을 당긴 것은 정부 부처별로 부품·소재, 문화콘텐츠, 정보통신 등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육성을 표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통부·문화부·산자부·농림부 등 정부 부처별로 각 분야 투자조합에 대한 출자를 늘려가고 있으며 한국부품·소재투자기관협의회, 문화콘텐츠투자기관협의
회, IT전문투자기관협의회 등 전문 투자기관 협의체까지 만들어졌다.
◇부품·소재
전문 투자에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산업자원부의 부품·소재 육성 정책이다.
세계 경제 패러다임이 완제품에서 부품·소재 산업으로 바뀌는 데 따른 실천 프로그램으로 글로벌 소싱이 가능한 스타기업을 키우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2010년까지 민관합동으로 부품·소재산업에 2조원을 투입해 세계 일류의 부품·소재기업 150개를 육성하고 산업계의 수요가 높은 200개 기술개발 과제 가운데 기계·전기·전자·자동차 금속 화학 섬유 등 7개 업종 50개 핵심 부품·소재의 기술개발을 시작으로 매년 50개씩 집중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즉 향후 10년간 미국·일본·독일 등지의 선진 부품·소재기업 200개사의 국내 투자를 유치하는 동시에 매년 50개의 ‘리딩컴퍼니’를 지정,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정부는 2010년까지 우리나라를 세계 최고 수준의 부품·소재 세계적 공급기지로 탈바꿈시킨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산자부가 지난해 민간매칭펀드까지 합해 부품·소재 분야에만 지원한 액수가 1735억원. 올해에는 정부자금 767억원을 비롯해 민간부문에서 100여개 부품·소재 전문기업에 1200억원 이상의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한국부품·소재투자기관협의회는 2001년도 제1차 부품·소재기술개발사업을 통해 산업기술평가원의 기술성 심사를 통과한 85개 업체 중 먼저 45개 업체에 대해 사업성 심사를 거쳐 이를 통과한 17개 업체에 민간 투자자금 182억원, 정부출연금 234억원 등 총 560억원의 매칭펀드를 지원했다. 또 나머지 40여개 업체는 사업성 심사를 통과한 업체에 대해 민간투자자금 약 200억원, 정부출연금 약 250억원 등 총 600억원 규모의 매칭펀드도 지원했다.
2001년도 제2차 부품·소재기술개발사업도 지난 7월 20일 지원대상 과제공고로 시작됐으며 부품·소재투자기관협의회는 산업기술평가원의 기술성 평가가 종료되는 9월 중순부터 12월초까지 사업성 심사를 거쳐 12월말 50여개 업체에 대해 민관 매칭펀드 약 1200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문화콘텐츠
올해들어 그 성장이 눈부신 분야다.
문화콘텐츠 분야에 대한 투자는 마치 금광을 찾아 ‘서부로 서부로’ 향했던 서부개척 시대를 연상케 하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대박에 고무된 벤처캐피털들이 너도나도 문화콘텐츠를 부르짖고 있다.
IT경기 침체 이후 뚜렷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벤처캐피털들이 포스트IT로 문화콘텐츠를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콘텐츠 열풍의 시작은 충무로에서 불어왔다.
‘쉬리’로 시작된 한국영화 대박 행진은 ‘공동경비구역JSA’ ‘친구’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 ‘조폭마누라’ 등으로 계보를 잇고 있다.
이같은 영화계의 돈 풍년은 주변 산업으로까지 흘러들고 있다. 가장 먼저 수혜를 입고 있는 분야가 애니메이션·게임 등을 필두로 한 문화콘텐츠 분야며 다음달 막이 오르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등 실황 공연까지 확산되고 있다.
올해 문화관광부 등 정부 주도로 결성되고 있는 문화콘텐츠 투자조합만 해도 게임조합 150억원, 문화콘텐츠투자조합 330억원, 음반조합 350억원, 디자인조합 100억원 등 총 93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또 KTB네트워크와 산은캐피탈을 비롯한 5대 메이저 벤처캐피털이 평균 500억원 정도의 문화관련 투자재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중견 벤처캐피털 10여개사가 평균 100억원 규모의 문화관련 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총 3500억원 가량의 자금이 문화콘텐츠산업에 투자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업계에선 향후 30개 정도의 벤처캐피털들이 평균 50억원의 자본을 갖고 문화콘텐츠 분야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정보통신
이전까지 우리나라 벤처산업을 이끌어온 것은 단연 정보통신을 비롯한 IT부문이다.
정보통신부는 지난달부터 미국 테러사태 이후 국제 금융시장 불안과 경기 둔화에 따라 투자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IT 중소·벤처기업을 돕기 위해 정부 재원 710억원을 포함, 1770억원 규모의 IT전문 투자조합 추가결성에 들어갔다.
특히 이번에 결성되는 조합 중에는 지금까지의 일반 IT전문 투자조합 말고도 한·중 무선기술 벤처펀드와 한·인도 IT 협력펀드도 포함돼 있는 등 지역별 특화펀드도 결성하는 게 특징이다.
이 중 한·중 무선기술 벤처펀드는 정통부가 출자한 1000만달러를 포함해 모두 3000만달러 규모로 결성중이며 한·인도 IT 협력펀드는 2000만달러(정통부 900만달러 포함) 이상 규모로 각각 결성할 예정이다.
또한 일반 IT전문 투자조합의 경우 민간 투자시장이 위축돼 민간 매칭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결성 규모를 줄여 정통부 출자 50억원을 포함, 모두 125억원 규모로 8개 조합을 조성중이다.
이와 함께 정통부는 창업초기 기업을 지원하고 IT 인큐베이션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IT 인큐베이터와 벤처캐피털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120억원(정통부 60억원 포함) 규모의 투자조합 결성을 위해 현재 업무집행조합원 모집에 들어갔다.
IT전문 투자조합은 IT 중소·벤처기업에 전액 투자하며 특히 창업 3년 이내의 초기 기업에 40% 이상을 투자토록 하고 1차 연도에 총 조합 출자액의 30%, 2차 연도에 60%, 3차 연도까지 90%이상을 투자토록 하고 있어 창업 초기기업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같은 정부기관의 전문 투자조합 결성은 벤처캐피털업계의 투자 전문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벤처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이 아닌 벤처캐피털을 통한 시장 기능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벤처캐피털업계 한 관계자는 “부처별 업무집행조합원 선정 심사를 통해 벤처캐피털업계의 자연스런 재편을 가져오고 있다”며 “소형 창투사들이 다수를 이루는 국내 벤처캐피털산업의 특성상 전문화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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