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테러 등 세상이 뒤숭숭하기만 하다.
10년지기 우정도 가끔은 금이 가고 30년을 같이 산 부부도 법정에까지 서는 힘든 세상이다. 각박하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세상에 우리네 현대인들은 어디서 지친 몸을 쉴 수 있을까. 모두가 안고 가는 질문들이다.
세상이 점점 살기 힘들어질수록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동경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러나 회색 빌딩숲 사이에 갇혀 사는 현대인들 중에 자연에 대한 이같은 그리움을 충족시키며 사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특히 자본주의의 정점에 위치해 있다고 하는 벤처투자, M&A, 구조조정 등의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더욱 삭막할 따름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자본의 꽃이라는 첨단 금융산업에 종사하면서 자연과 10년지기 우정을 키워가는 사람들이 있다. 산은캐피탈의 윤왕근 강남지점장(40)과 이호준 M&A 및 기업구조조정 팀장.
물론 산속에 파묻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다.
윤 지점장은 대학 졸업후 서예에 취미를 붙이다 10년전 우연한 기회에 동양화를 그리는 분을 만나 그림을 시작하게 됐다.
붓을 들자마자 화선지에 먹물이 빨려드는 느낌에 매료돼 버렸다. 인생과 너무도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흘러간 인생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듯이 이미 화선지에 젖어든 먹물도 역시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양화의 경우는 덧칠이 가능하지만 동양화는 한 번 그어진 선위에 다른 선을 그릴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인생과 너무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나온 삶을 다시 살 수 없듯이 말입니다.”
윤 지점장이 말하는 동양화의 또 다른 매력은 ‘여백의 미’다. 우리민족의 정서와 너무도 닮아서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지만 만족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가득 채우지 않고도, 아니 가득 채우지 않아야 참다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동양화야말로 정신적인 안정을 찾아주는 보배라는 설명이다.
윤 지점장의 동양화 실력은 매년 동호회 모임인 ‘관송회’의 정기 전시회에서도 눈길을 끌 정도로 수준급이다. 동양화 중에서도 담채화보다는 수묵화쪽을 즐긴다. 담백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집에 작은 화실도 마련해 놓고 퇴근후면 항상 먹을 갈고 붓을 든다. 주말이면 가끔 야외로 나가 스케치도 하며 자연의 푸근함을 즐긴다.
윤 지점장이 그리는 쪽이라면 이호준 팀장은 감상과 수집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지난 90년 입사한 이 팀장이 그림과 인연을 맺은 것은 순전히 회사탓(?)이다.
한국기술금융이 산은캐피탈로 합병되기전 본사가 인사동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주변의 화랑에서 열리는 각종 전시회에 관심을 갖게 됐고 호기심 반으로 시작한 이같은 취미는 점점 그를 그림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구내식당이 없던 시절, 자연히 식사를 하러 인사동 거리를 거닐게 됐고 이곳 저곳을 들르며 즐길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 갔다.
이 팀장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서양화, 그중에서도 유화쪽이다. 다양한 색채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서다.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 덧 일상에 쫓기던 마음은 사라지고 스스로의 템포를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10분이든 20분이든 매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보는 것에 만족하던 이 팀장은 3∼4년이 지나면서 갖고 싶어지는 욕구를 느꼈다고 한다. 처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묻혀 있던 그림이 한번, 두번 보는 횟수가 늘수록 눈에 선명히 들어오는 경험을 하면서 오랫동안 곁에 두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주머니 사정(?)상 유명화가의 그림을 모을 수는 없었지만 맘에 드는 신인 작가들의 그림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현재 소장중인 그림 중에는 이미 화단의 중견 작가가 되어 있는 사람의 것도 있다.
이 팀장의 집은 그래서 항상 그림으로 가득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계절에 맞는 그림을 바꿔 거는 게 또 다른 즐거움이다.
“전혀 다른 것 같지만 M&A, 구조조정 업무도 유화와 맥을 같이 합니다. 유화에서 포인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림이 틀려지듯 M&A나 구조조정에서 그 구도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거래 성사 여부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일도 그림 대하듯 하니 즐겁다는 게 이 팀장의 설명이다.
인생이란 화폭에 그려가는 두 사람의 삶이 아름답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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