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방한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우리나라 정부에 낸 ‘위기를 넘어서:21세기 한국의 비전’ 보고서는 한마디로 IT를 바탕으로 BT를 접목시킨 퓨전기술이 우리나라의 신경제 앞날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기술의 격변기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퓨전 신기술은 끊임없이 창출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기술 창출은 바로 새로운 산업형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서 활기를 띠고 있는 BIT 융합기술개발은 신기술을 향한 이제 첫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이 BIT 융합기술 기반마련을 위해 지난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 사이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생물정보 관련거점을 구축, 정부주도의 대규모 투자와 인력양성을 추진했던 데 비하면 아직 명함도 내놓을 수준이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IT 융합기술개발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연구개발 과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21세기는 IT·BT산업이 공존해 새로운 시너지효과를 창출해내는 퓨전시대기 때문이다.
◇BIT 융합기술이란=IT기술을 기반으로 생명현상과 관련된 생체콘텐츠를 개발, 공유, 서비스하기 위한 생체핵심 기초 및 첨단 응용기술을 말한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건강이나 복지, 장애인 등 삶의 질 향상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원천 핵심 및 응용기술이 여기에 포함된다.
BIT 융합기술은 크게 생물학적 물질에 관한 정보를 컴퓨터기술을 이용해 체계적으로 정리, 분석, 활용하는 생물정보학기술(bioinformatics)과 생물학적 감지기능을 이용해 바이오칩, 생체로봇, 생체 컴퓨터용 칩 등을 연구개발하는 생체소자기술(bio-device-technology) 등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의 강점=‘황금알을 낳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불리는 바이오산업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IT기술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선진국에서도 IT기술력을 바탕으로 생명공학의 응용분야에 대한 발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행하게도 BIT 융합기술개발에 필요한 정보통신 관련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와 있다. 이같은 우리의 IT기술력을 바탕으로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진다면 바이오기술에서 선진국보다 한참 뒤처진 국내 기초과학기술 발전에도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국내 BIT 추진현황=대덕연구단지내 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생명공학연구원(KRIBB) 등 2개 연구기관이 정부부처의 지원을 받아 주도적으로 BIT 기술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전자통신연이 2005년까지 추진하게 될 ‘초미세 생체신호 통신용 마이크로 소자 핵심 기술개발’ 프로젝트는 국내 BIT 융합기술 개발사업 제1호로 불린다. 물론 이 프로젝트에는 생명공학연구원과 서울대, 벤처기업인 마이다스시스템 등의 연구개발 인력이 대거 참여한다.
휴대폰 등 개인정보단말기와 무선인터넷통신을 이용한 인체정보의 실시간 모니터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초미세 생체감지 및 송수신용 마이크로 소자를 개발하게 된다.
바이오인포매틱스 사업을 위한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달 정통부와 과기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바이오인포매틱스 포럼은 그동안 불모지로 여겨졌던 이 분야 기술개발을 위한 사전 준비단계로 받아들여진다.
포럼 대회장을 맡은 임기욱 ETRI 컴퓨터·소프트웨어기술연구소장은 올해 말 관련부처 장관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통해 정책 연구결과 등 구체적인 각론을 보고한 후 늦어도 내년 초부터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ETRI 컴·소연의 정보검색팀을 확대 개편, 바이오인포매틱스팀을 신설하는 한편 생명공학연의 정보기술 관련 팀과도 협력을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런가 하면 산업계에서도 IT·BT기술 접목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대덕밸리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BIT 개발열기는 시장 상품으로 직접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향후 과제=BIT 융합기술개발과 관련된 전반적인 국가 차원의 마스터플랜이 시급하다. 지난 여름 정부가 각 부처간 경쟁적으로 기술개발을 추진하던 방식에서 이를 종합·지원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했으나 산자·정통·과기·보건복지부 등 부처간 알력다툼은 여전한 것이 사실이다.
속속 떠오르는 주요 기술에 대해서도 사전에 기술개발 범위를 좁혀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정부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관련된 기술은 이것 저것 다 넣다 보니 진짜 쓸 만한 뚜렷한 연구 성과물은 없다는 이야기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BIT사업의 성공 여부는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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