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다녀갔다. 지구촌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 정부의 공격(기업분할)마저 거뜬히 막아낸 ‘IT황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16일 입경, 17일 이한했다.
이틀간의 짧은 방한이었지만 ‘황제의 행차’는 과연 요란했다. MS의 차세대 전략상품 ‘윈도XP’ 출시와 맞물린 탓도 있지만 그의 행동반경이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방한은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황제’는 IT기업에서 한걸음 나아가 이근식 행정자치부 장관을 만났고 청와대를 예방했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전자정부구현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한빛은행 이덕훈 행장과도 자리를 같이했다. 한빛의 금융 비즈니스 노하우와 MS의 닷넷기술을 접목,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창출한다는 전략적 제휴 계약도 체결했다.
그뿐인가. 비슷한 보따리를 들고 김정태 국민주택 통합은행장과도 머리를 맞댔다. IT산업과 기술의 미래를 강조하는 강연, 기자회견까지 포함하면서 ‘국가원수’를 방불케 하는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비록 ‘황제’의 방한으로 일단락될 것 같던 한국통신 지분투자문제는 특별한 결론 없이 지나갔지만 ‘성공적이고 화려하게’ 한국 방문을 마무리한 것처럼 보인다. MS도 만족할 만한 성과로 자평하고 있고 기술협력 혹은 마케팅 파트너십의 대상이 된 국내 업체들도 자랑이 여간 아니다. 세계 최고·최강의 기업과 손잡는다는 것은 시장에서의 안전판을 마련하는 셈이 되고 기업가치는 물론 종업원들의 사기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사실 IT 경기가 고꾸라지면서 IT기업들은 전세계적으로 자금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기댈 곳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이어서 현금보유액만 4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MS는 국내 업계에 가히 산타클로스로 여겨지고 있다. 모두들 산타의 선물만을 학수고대하던 차에 ‘황제’는 산타 할아버지의 역할까지 완벽히 수행해냈다. 적어도 이번 방한에서만큼은.
그러나 비즈니스는 프로의 세계다. 서로 주판을 튀겨 단돈 1원이라도 남겨야만 ‘오케이’하는 것이 장사꾼의 속성이다. 물론 상대가 있을 경우 서로가 남는 장사, 소위 윈윈게임이라면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비즈니스가 된다. 더구나 빌 게이츠는 ‘마케팅의 천재’라는 밑천을 통해 오늘날 ‘황제’로 등극한 사람이다. 퍼주기식 지원이나 밑지는 장사는 그의 사전엔 없다. 이런 사정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제는 한국 정부와 업체들도 ‘계산서’를 들여다봐야 한다.
MS와의 제휴로 모든 것이 술술 풀리면 다행이지만 얻은 것이 있다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 MS가 한국이 예뻐서 무조건적인 협력과 투자를 감행할 리는 없다. 적어도 기자가 보기에는 이번에도 한국보다 MS가 남는 장사를 한 것 같다. 빌 게이츠가 남기고 간 흔적은 철저히 MS의 차세대 IT 시장 전략에 입각한 자사 실리챙기기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에서 시작해 디지털가전, 모바일 인터넷과 단말기, 심지어 뱅킹서비스와 엔터테인먼트까지 3세대 기술의 테스트베드인 한국 시장을 적절히 활용하겠다는 계산이 숨어 있다. MS와 연을 맺었다고 들뜨기에 앞서 이로 인해 MS에 지불해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이택부장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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