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곳은 없는데 버리기에는 아깝고’.
최근 금융권의 차세대 시스템 개발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사들이 기존 구형장비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90년대 초만해도 금융사들은 시스템을 교체하면서 쓸모가 없게 된 메인프레임이나 서버를 대부분 대학측에 무상 제공하는 식으로 처리했다. 이러한 장비는 대학의 전산시스템이나 학습교재용으로 유용하게 쓰였기 때문에 금융사들이 가장 쉽게 사용하는 구형장비 처리방법이었다.
하지만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식의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하드웨어의 경우 일단 제품을 구입하면 구매자의 자산이 되기 때문에 무상 공유가 가능하지만 그 안에 설치된 소프트웨어는 원 구매자에게만 라이선스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고가의 소프트웨어를 구입하기 어려운 대학이 이러한 장비를 인수하지 않으려 하면서 요즘은 이러한 무상 공여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결국 금융사들은 구형 서버 처리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지만 특별히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 상태다.
올들어 기존 시스템을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 기반으로 교체한 곳은 한국산업은행·SK증권·알리안츠제일생명 등. 이들 업체는 모두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시스템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수십억원에 달하던 메인프레임 장비 처리를 위해 여러 복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교체작업을 시작해 1년만에 작업을 마친 SK증권(대표 김영석)은 당시 메인프레임 장비가 낡아 신형장비를 구입해야 했지만 이미 유닉스 전환을 결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IBM으로부터 신형 장비를 대여하는 형식으로 지난 1년동안 시스템을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구형 장비의 부품중 쓸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기종에 장착하고 원래의 장비는 한국IBM에 폐기처분을 맡겼다.
지난 3월 유닉스 전환 작업을 마친 한국산업은행은 폐기 처분보다는 사회 환원쪽으로 방침을 정하고 대상을 물색중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오래된 기종이라 쉽지 않지만 고가의 장비를 폐기시키는 것보다는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곳을 찾아 제공하는게 낫다는 판단 아래 작업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4일 차세대시스템 가동에 들어간 알리안츠제일생명은 아직 이렇다할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두 대의 메인프레임중 한 대는 일부 업무에 쓰고 있지만 내년 초 사옥 이전에 맞춰 이들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처리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구형 장비에 대한 가치를 평가한 후 처리방법을 결정하겠지만 딱히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냥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두 대의 메인프레임 장비중 한 대는 워낙 구형이라 사무실 벽을 허물고 꺼내야 할 정도로 덩치가 크다”며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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