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우울한 창립기념일

 회사 창립기념일은 즐거운 날이다. 휴일이라서 좋기도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생일을 맞았다는 점에서 대개 잔치 분위기로 떠들썩하기 마련이다. 회사마다 대규모 기념행사를 갖거나 임직원들의 화합을 위해 체육대회를 열기도 한다. 때로는 회사가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 중장기적인 비전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10일로 17번째 창립기념일을 맞은 하이닉스반도체의 분위기는 다르다. 기념식도 화합을 위한 체육대회도, 도약을 위한 비전 제시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가 생일을 맞아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사정은 정반대였다. 99년 10월 14일 LG반도체를 합병한 하이닉스반도체는 세계 최강의 반도체 기업을 꿈꾸며 2만2000여명에 달하는 임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대규모 연수를 실시했다. 개인당 2박 3일 일정인 연수는 이듬해 상반기까지 계속됐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화려한 출발과는 달리 꼭 2년이 지난 지금 하이닉스반도체는 채권단의 처분만 기다리는 속절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지난 2년간 잊지 못할, 아니 기억하기 싫은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전장사업부를 현대오토넷으로 분사하고 통신사업부를 현대큐리텔로 분사하는 등 사업부 가지치기를 단행했고 직원 수도 1만3900여명 수준으로 대폭 줄였다.

 심각한 경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올들어서만 수처리시설·영동사옥·TFT LCD사업부·STN 사업부·맥스터 지분 등을 잇따라 매각하는 등 돈이 될 만한 시설 및 사업 대부분을 팔아 치웠다.

 자구의 몸부림인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기업생존자금 마련을 겨냥, 일부 반도체 팹(FAB)까지도 중국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상황이 어려워진 것은 회사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우선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가 위태로워짐에 따라 겪게 되는 정신적 고통과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모은 회사주식이 담뱃값 수준으로 떨어져 겪는 경제적인 고통 등 이중고에 처해 있다. 이 때문에 회사를 비롯한 임직원 모두의 마음은 한껏 기뻐해야 할 창립기념일을 맞아서도 잔뜩 찌푸린 날씨만큼이나 무거울 뿐이다.

 반도체 빅딜이 있은 후 2년이 지났다. 지금으로부터 또다시 2년 지난 2003년 10월 하이닉스반도체의 생일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산업전자부·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