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은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이 한정적이며 제작자본 규모가 전체 시장에 비해 제한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간혹 경쟁사의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을 때 자신의 프로젝트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위험한 생각이 끼어들 소지가 많다. 이 같은 개념이 적용되는 사회이론이 제로섬 게임(zero-sum)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시장은 영화 시장의 사례에서 보듯 아직 논제로섬 게임이 보편적이라는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우리 영화가 기획만큼 흥행성과를 거두지 못하던 90년대 중반. 대기업은 영상산업에 막대한 부가가치를 표방하며 태풍처럼 이 시장에 진출했으나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와 함께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공동화 현상을 맞았다. 거대 양성자본의 영화계 지원이라는 긍정적인 기능이 한순간에 패닉현상으로 치달았다. 이 때문에 우리 영화계는 대기업들의 시장 참여 이전보다 더욱 어려워진 환경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대기업의 마지막 투자지분이던 ‘쉬리’가 상상지 못한 흥행성과를 거두게 되면서 상황은 다시 급변했다. 일반 투자자들이 막연하게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반신반의했으나 ‘공동경비구역 JSA’와 ‘친구’가 연이어 기록 경신과 대박의 꿈을 이뤄내자 영화 시장에 투자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저금리 시대와 주식 시장의 불황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이 이를 더욱 부채질했으며 자연스럽게 영화 시장이 유망투자 분야로 주목받게 됐다.
그러나 영화투자는 도박처럼 위험도(risk)가 아주 높은 산업이다. 그래서 시나리오가 좋아도 개봉 시기가 적절하지 못하거나 시나리오와 개봉 시기가 좋더라도 출연배우의 스타시스템이 적기에 작동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투자와 관련된 사기사건까지 등장할 정도로 국내 주요 자본은 영화산업에 집중적으로 몰려들었다.
영화 관계자들은 이 때문에 영상산업이 논제로섬 게임이라고 과감히 평가한다. 즉 어느 한 프로젝트의 성공이 다른 프로젝트의 성공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활성화할 수 있는 시장 여건을 지니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애니메이션 또한 영화와 동일한 시장구조를 지니고 있어 전망이 결코 어둡지 않다.
‘꼬마대장 망치’ ‘원더풀데이즈’ ‘마리이야기’ ‘아크’ 등 내년 말부터 오는 2002년까지 개봉될 장편 애니메이션은 작품 흥행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국내 영화투자자본의 잉여지분이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업계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환경에는 이와 같은 사례를 서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어떤 프로젝트의 중간 제작물이 기대 이상으로 높은 질적 완성도를 보이게 되면 환영하는 분위기보다 불안해하고 투자 대상의 기회를 놓칠 것 같은 안타까움이 앞서서는 안 될 것이다.
잘못하면 공멸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까지 느끼면서 성공사례를 서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한다면 애니메이션 시장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서로의 성공을 축하하고 도움을 주는 문화가 자리매김할 때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은 발전하고 이 분야에 투자지분을 확대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서로의 성공을 인정해야 할 때다.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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