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CEO>선후배 만남-이화순 한민시스템 사장&김세은 웹포러스 사장

 ‘50줄의 여성벤처 1세대와 20대 후반의 신세대 여성 CEO’.

 지난 12일 오후 4시, 서울 테헤란밸리에서 ‘소프트웨어 분야 벤처 여성CEO 1호’인 이화순 현민시스템(http://www.hyunmin.co.kr) 사장(49)과 20대 여성 벤처기업가로 주목을 받고 있는 김세은 웹포러스(http://www.webforus.co.kr) 사장(28)이 만났다. 엄마와 딸 같아 보이는 두 사람은 구면이었다. 지난해 국민대 평생교육원으로부터 50대와 20대 사장을 대표해 강사로 나란히 초빙되어 갔다가 알게 됐다.

 “20대에 인터넷에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가미하고 인터넷 광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김 사장의 안목과 이를 가지고 일찌감치 창업한 김 사장의 용기가 정말 대단합니다. 김 사장을 처음 봤을 때 앞으로 크게 될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지요. 부드러운 듯 하면서도 속이 꽉찬 김 사장 같은 사람이 정말 무섭죠.”

 “이 사장님은 저에게는 까마득한 대선배시죠. 여성으로서 일찌감치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드신 데다 멀티미디어를 통한 콘텐츠와 여성을 위한 정보서비스까지 제공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정보화에 앞장서 오신 데서 정말 배울 게 많은 분이에요.”

 ‘인생 자체가 벤처’라 할 만한 이화순 사장.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이 사장은 이화여대 사학과에 입학해 막 공부를 시작할 무렵, 갑자기 집안에 몰아닥친 불행으로 졸지에 산꼭대기 남의 집 문간방으로 이사한 데 이어 몇년뒤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여의었다. 그는 대학을 1년 다니고 휴학해 2년 동안 무역회사에서 ‘메뚜기’로 불릴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니며 일했다. 그는 복학하고도 하루 세번에서 많을 때는 다섯번까지 가정교사로 뛰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그렇게 해서 대학을 졸업한 이 사장은 1978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취직했다. 컴퓨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구경도 못해 봤던 이 사장은 컴퓨터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고는 여기에 푹 빠져들었다. 컴퓨터를 익힌 이 사장은 1988년 아는 사람의 사무실 귀퉁이에 책상 두개 가져다 놓고 현민시스템 간판을 내걸었다.

 90년대 초 소프트웨어 개발사업에 이어 콘텐츠 사업에 새로 뛰어든 이 사장은 PC를 다루면서 컴퓨터를 배우는 교육 프로그램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하고, 1992년에 주부와 중장년층에서 인기를 모은 PC교육용 CD롬 ‘PC길잡이 알짜배기 시리즈’를 출시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나 인터넷용 콘텐츠외에 출판·음반 등 여러 매체로 확장했다. 이어 이 사장은 영어교육사이트 엔다이얼로그(ndialogue.com)를 통해 양방향 학습서비스를 개시한 데 이어 올해 여성포털사이트(w21.net) 운영업체인 더블유21(w21)도 설립하는 등 의욕에 차있다.

 이화순 사장이 오랜 사회경력을 바탕으로 창업을 했다면 김세은 사장은 대학생때 벤처의 길에 뛰어든 정반대의 경우다.

 이화여대 경영학과 93학번인 김세은 사장은 3학년을 마치고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다가 재학생들이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 귀국해 창업을 결심했다. 그리고는 99년 유무선 포털사이트에 전문 콘텐츠를 제공하는 웹포러스를 세웠다.

 김 사장은 최근 인터넷 배너광고의 대체 광고기법으로 각광받고 있는 ‘애드테인먼트’를 사업에 적용, 개인전용 데스크톱 포털(mypostpage.com)과 인터넷 광고 게임사이트(adq.co.kr)를 동시에 열어 주목받고 있다. 애드큐의 경우 배너광고의 단순한 한계를 극복하고 DDR 등의 이채로운 게임과 광고를 접목시켜 광고주들의 문의와 회원수가 늘고 있다.

 “나와 김 사장의 공통점은 둘 다 무모하고 무지하다는 점이에요.” 이 사장은 편한 길을 놔두고 애써 고생의 길위로 나선 김 사장이 “무척 안쓰럽다”고 몇차례나 말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잖아요. 기업을 경영하면서 귀감이 될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게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고통을 치른 만큼 대가가 따르리라고 믿어요.” 김 사장은 “이게 성장의 지름길 아니겠냐”라고 되묻는다.

 여성 벤처인에게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여성 CEO로서 회사내 조직관리의 어려움은 없을까.

 “과거나 지금이나 남성위주의 문화가 아직도 굳건히 자리잡고 있죠. 여태까지 권위에 익숙한 사람들의 경우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극단적으로 나뉘죠.” 이 사장은 10년전과 똑같이 여성 CEO에 대한 편견이 개선되거나 별로 바뀐 게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보니 여성 벤처인은 사업을 하며 남성 최고경영자들과 달리 갖가지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한다.

 “사람관계가 가장 힘들어요. 계약 맺고 업무 협의하는, 이런 문화의 의미를 파악하고 적응하는 데만 10년이 걸렸어요. 아마 이를 빨리 알았더라면 성장이 빨랐겠죠.(웃음)” (이 사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성 벤처인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높은 기대를 걸었다.

 “산업사회가 남성중심적이고 가시성 시대였다면, 이제는 비가시성 사회로 접어들고 있죠. 가시성 사회에서는 모방보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해요. 여성 CEO들은 기존 남성중심의 사회문화 구조와 물질사회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가치를 다르게 적용하면서 새로운 변혁기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죠.” (이 사장)

 “나의 경우, ‘20대 여성 사장이 경영하는 회사니까 뭔가 다른 가치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긍정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 사장은 “여성이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미래에는 여성이 더 유리하다”고 강조한다.

 기술·사회 환경이 급변하면서 최고경영자의 부침 역시 잦은 상황에서 여성 벤처인이 생각하는 최고경영자의 덕목은 뭘까.

 “앞으로는 문화의 다양성이 부각됩니다. 따라서 문화를 읽어내는 능력이 중요하죠. CEO의 첫번째 조건은 문화를 읽어낼 수 있는 안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앞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이 사장)

 “자타가 공인하는 기술과 실력을 갖추려면 ‘내공’을 쌓아야 한다고 봐요. 하지만 내공을 기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경영자마다 다르죠. CEO는 차별화된 내공을 찾아 나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김 사장)

 이 사장은 내공을 쌓겠다는 자세를 가졌다는 것을 높이 산다며 김 사장을 추켜세웠다.

 이 사장은 요즘 성경을 읽으며 사색할 때가 많다. “고통은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안일함속에서는 성장이 없죠. CEO가 되겠다는 것은 고통을 감내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나 다름없죠.” 이 사장은 CEO가 되는 게 인생을 배우는 지름길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CEO 능력이 회사에 보탬이 돼야 하는데, 가끔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자신이 변함없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거죠.” 독서를 즐기는 김 사장은 이를 위해 사고를 항상 유연하게 가지려고 노력한다.

 스스로를 여성이라는 테두리에 가둬놓기를 거부하는 여성 벤처인들이 바꿔가는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궁금해진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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